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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Oct 08. 2023

20011008

공항 노숙 후 맞는 생일

생일이고, 일어나니 공항이다.



미리 축하의 인사를 건넨 사람들이 몇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정확히는 어제가 내일이었던 군대에서 생일을 지낸 이후, 일 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짧은 하루가 갖는 의미가 퇴색했다.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맞이하는 생일은 우습고도 풋풋했다. 조금 시끄러운 연례행사 정도로 정의할 수 있으려나. 피드에 달린 축하 게시물의 개수로 자신의 인기를 가늠하던 유치 찬란함은 그 시기의 치기 어린 당돌함이자 경쟁에 매몰되어 감에도 나름 족적을 남겨보겠다는 처절한 발악 아니었을까.


작년의 생일은 소주 한 병에 묻어 지워버렸다. 잔에 담아 되새김질했던 추억은 휘발성이 강해 달면서도 비릿하게 썼다.


사실 내일이 생일이다 알게 된 것도 어제의 일이다. 부쿠레슈티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같이 여행하는 친구와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던 차, 공항에서 흘려보낼 또 다른 밤에 대해 얘기하던 차, 10월 8일이 분명 어떠한 날이었는데 과연 무엇이었을까 골몰하다 불현듯 생일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온 세상이 내 생일을 알아야 한다며 홍보하고 다니는 사람과 조용히 여느 하루처럼 생일을 떠나보내는 사람이 있다는데, 생일이면 친구들을 잔뜩 모아 롯데리아에서 파티를 했던 어린아이는 이제 생일을 잊고 돈을 아끼고자 공항 벤치에서 잠을 청하는 겉어른으로 변했다.


10월 8일이고, 열여섯 번째 공항 노숙 끝에 나는 일어났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읽고 혼자인 내게 생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이내 그 생각을 글로 녹여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벤치에서 일어나 체크인 카운터로 향해, 게이트를 거쳐, 비행기에 올라, 기차를 타고, 다시금 터벅터벅 걸어 기숙사에 도착했다. 오늘은 라면이 아닌 육개장을 챙겨 먹여야겠다 다짐했건만 생일에 무심했던 지난주의 나는 쌀을 사놓지 않은 모양이고, 그렇게 라면 한 그릇과 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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