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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Sep 30. 2023

버거킹의 종이 왕관

그 장삿속

프랑스 니스의 물가는 대표 휴양지답게 결코 저렴하지 않아 이틀 연속으로 끼니를 버거킹에서 해결하고 있다.



버거킹에서 해결한들 최소 15,000원에서 20,000원의

지출이 불가피하기는 하나


버젓한 식당에 가자니 맥주를 시키지 않을 자신이 없고, 맥주를 시키자니 밥값을 3만 원 밑으로 유지할 자신이 없어,


결국은 부동산 장사하는 맥도널드는 지나치고 어느 정도 질이 보장된 버거킹으로 털레털레 발걸음을 옮기고 마는 것이다.




최소한의 맛이 보장된 수준을 넘어서 통새우 와퍼 하나면 근사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한국의 버거킹과 달리


미국의 버거킹은 안 좋은 쪽으로 버거의 맛이 편차가 크고,


지난 수개월 간 유럽을 여행하며 대부분의 끼니를 과자로 때웠기에 여타 매장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니스 중심가에 들어선 버거킹의 맛은 객관적으로도 괜찮은 편에 속했다.



파리 날리는 맥도널드와 달리 점심시간을 맞아 찾은 버거킹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 데다 자리도 거의 만석이었으니.



어제는 4시에 찾았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오후 1시경에 찾아서 그런지 매장이 북적였다.


붐비는 시간대에 버거킹을 찾아 확인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아이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둘에 하나 정도의 아이들은 머리에 종이 왕관을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으니 당연 부모들도 많았고, 이 하나만으로 매출 상승에 분명 도움이 됐겠지만,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기업에서 머리를 잘 썼다고 생각되는 포인트, 그보다 더 눈길을 잡아끈 지점은, 바로 아이들의 태도였다.


매장에서 뛰어다니지 말 것을 요구하는 부모님의 말을 즉각 수용하고, 카운터에 주문한 음식을 받으러 부모님 대신 나서는 모습에서 나름의 주인의식, 그리고 책임감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대략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매장에 있었는데 그중에 우는 아이도, 무언가를 쏟거나 정신없이 매장을 질주하는 아이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고작 종이 왕관 하나의 효과가 대단하구나 싶었다.


이제 막 갓난아기 티를 벗은 것 같은 어린아이들부터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한 번 써보는 중학생들까지, 연령대를 막론하고 어른이 아니라면 머리에 왕관을 쓴 채 매장을 활보하고 다녔다.


지난 4월, 영국의 찰스 3세가 지지자가 건넨 버거킹 종이 왕관을 웃으며 거절한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떤 연유로 왕관을 거절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종이’라는 재질의 가벼움과 ‘버거킹’이라는 브랜드의 상업성으로 인해 거절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관은 어른들의 전유물이다.


달리 말하면,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아이들의 행동에도 조금이나마 어른의 티가 묻어났던 게 아닐까.


왕관을 훼손할 아이는 없기에, 굳이 새로운 왕관을 자주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부모든 매장 차원에서든 아이에 대한 관리가 별달리 필요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결국 지갑을 여는 주체인 부모들이 아이와 더 편하게 매장을 찾을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함께 찍어서 남길 수 있는 사진까지.


(아이들은 적게 먹으니 매출 상승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결국 잠재적인 미래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다.)


허기를 달래려 들어간 프랑스 니스의 버거킹에서 종이왕관 하나에 녹아낸 버거킹의 좋게 말하면 영리한 마케팅 전략, 굳이 폄하하자면 영악한 장삿속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하루. 이 또한 여행의 묘미라면 또 다른 묘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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