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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Oct 31. 2023

아빠가 끓여준 라면 한 그릇

라면 사랑

찬장에 남은 라면 열한 개와 객지서 비운 아흔 그릇을 더하면 올해만  어언 백여 봉지.



때론 얇은 지갑에 고개를 돌리곤 물을 끓였고, 때론 객지서 고향의 맛을 그리며 계란을 풀었으며, 때론 그저 일상에 치이다 시간이 부족해 게눈 감추듯 해치우며, 다양하다면 다양하지만 결국 툭 까놓고 보면 셋 정도로 요약되는 이유로 수많은 그릇을 비워냈다.


지갑 사정이 나아진다 한들, 특유의 싸구려 풍미를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없거니와 두툼해진 지갑과 시간적 여유는 반비례할 것이 자명하기에, 적어도 수년간은 자주 찾지 않을까 싶은 게 솔직하고도 정확한 예상 아닐까.


여하튼 구태여 라면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를 돌이켜 보면, 언제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어릴 적 온 가족이 갯벌에 가 하루종일 채취한 백합으로 끓였던 그 라면의, 라면 수프가 첨가된 백합탕이었다만, 맛이 참으로도 농밀하고도 강렬했다.


주말이면 간간이 지친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가 끓여주셨던 라면을 지나, 컵라면을 박스 채로 사놓고 먹다 끝끝내 기숙사 규칙을 몰래 어겨가면서까지 냄비를 사, 봉지 라면이라는 금단의 유혹에 손을 댔고,



이내 군대에서는 꼭 점호 후에 몰래 전자레인지를 돌려 먹는 컵라면이 그리도 달콤했다. 그리고 유학을 떠나 생존하기 위해 캠핑용 용기에 넣어 돌려먹는 라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라면을 맛보고 조리했음에도 여전히 내게 라면은 아빠의 라면이다.


무심하게 배고프다 투덜대면 “이 아빠가 한 그릇 또 끓여줘야지.” 하며 차려냈던, 계량컵 없이도 기가 막히게 탱글탱글한 면발과 포슬포슬한 계란이 없던 식욕도 북돋았던… 짜거나 싱겁거나, 어딘가 부족했던 엄마의 라면으로 인해 그 대비가 더 극명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 입에는 괜찮은, 설명서에 따라 충실히 조리한 라면을 동생 녀석이 입에 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빠의 라면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게 있지 않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내가 끓인 라면에서 아빠의 라면 맛이 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후추를 두 번 털어 넣어 비슷했을 수도 있지만, “별 거 없다. 많이 끓인 거지.”라고 답했던 아빠의 의중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이제 나는 라면을 제법 잘 끓인다.


끝끝내 내가 라면을 잘 끓이게 되었듯이, 결국 아버지도 때로는 얇은 지갑을 생각하고, 때로는 그저 당겨서, 때로는 일상에 치이다 시간이 부족해, 그리 라면을 끓이시다 결국 라면에 통달하게 되신 것이 아닐까.


나이 들어서는 아들내미를 기쁘게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바뀌었지만, 고달픈 인생살이 버텨가며 수많은 그릇을 끓이셨을 그 모습을 생각하며, 이제야 라면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겨울에 돌아가면, 김치 팍팍 넣은 라면 하나 꼭 끓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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