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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Oct 19. 2023

자취 한 상

넋두리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깨고 홍합탕을 한 그릇 끓여 차렸다.



한 달 전 까고 손질하는데만 장장 세 시간을 쏟아부었던 홍합


신줏단지 모시듯 고이 냉장고 한 구석에 놓아두었던 홍합을 해동시킨 건 어제의 일이었으나 요즘 따라 깜빡하는 일이 잦고, 어제의 나, 오늘 아침의 나는 점심시간이 다가와 마늘을 찾으려 냉장고를 열기까지 그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다른 오후가 흘러갔다.


늦게 마친 수업을 뒤로한 채 점심을 차려먹고 방정리를 하니 두 시. 조정래 작 ‘한강’을 들춰보다 깨어나니 3시 반이고, 머리를 자를 수 있을까 확인하려 나갔다 온 후 밥을 지으니 어느새 오후가 다 갔다.



반 시간을  못 기다려 지은 밥은 퍼석하고, 불을 늦게 내린 홍합은 질겅질겅 한 게 초장맛만 날 따름이고, 제대로 된 반찬은 캔 장조림 하나뿐이다. 개운하고 칼칼했던 국물 역시 창을 열어 가을바람 좀 쐬고 나니 영 식어버려 밍밍하다.


오늘따라 기네스가 쓰다. 술이 쓰면 삶이 달기 마련이고 달면 삶이 쓰기 마련이라는데 다 거짓부렁만 같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늘 이유 모를 외로움에 사람이 말하는 영상이라면 무엇이든 틀어놓고 식사를 하였는데, 오늘은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색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외면해 왔던 무엇들을 오롯이 마주하고 감내하고야 마는 시간이 찾아온 것일까.


아침에 읽었던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과 사랑을 논하고, 밥을 한 숟갈 퍼다 잠시 머릿속을 스쳐 간 싯다르타는 생각하고 굶을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다는데. 소설 한강 속 유일표 형제는 분단과 전후의 현실을 묵묵히 살아가는데, 복에 겨운 나라는 인간은 발전이 없어 오늘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말았다.


독서와 외국어 공부라는 습관은 이제 체화되어 그 이상의 퇴보를 막아주고 있으나 그렇다 한들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도무지 판단할 수 없고, 답답한 마음 달랠 길이 없어 취하지도 않을 맥주 한 캔을 따고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길어서 눈을 찌르는데, 손질은 요원한 앞머리처럼 치렁치렁 늘어난 걱정의 족쇄가 무거이도 짓눌러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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