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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Sep 23. 2024

이대로 깨어나지 않기를

 2023. 11.12: 잠식의 굴레

'받아들일 수 없는 통증을 경험하면 뇌는 일시적으로 불필요한 감각을 전부 차단한다.', 모르핀을 맞은 것처럼, 전쟁터에서 총알에 뚫린 병사가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 것처럼,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감각의 두꺼비집을 철컥 내려버린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책에서 접한 바 있다.


사극 혹은 영화에서 흔히 "불굴의 의지"로 포장돼 그려지곤 하는 불가해 하며 비합리적인 현상들에 대해 나는 그간 무시로 일관했다.


그저 무시하면 될 터였다…


새벽 4시 30분, 축축이 젖은 아스팔트 바닥 위에 선 채 점멸하는 가로등의 불빛, 그 불빛을 짓이겨 들어오는 은빛 칼날, 단말마의 비명, 튀다 못해 옷을 흥건히 적셔 흘러내리는 따스한 피, 내 피와 손금 사이사이, 이내 손바닥을 검붉게 물들인 그 흔적을 보다 혼절했고, 깨어났다.


홀로 잠들기 무섭다는 감정을 숨기고자, 영상이 흥미롭다는 핑계를 대가며, 일찍 잠에 들었다 혹 그 시간대에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시계가 2시를 꼬박 넘기고서야 잠을 청했음에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옆구리를 잡은 채 발작했다.


칠흑 같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 보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하나 이후에도 수차례 잤다 깨기를 반복한다.


휴대폰을 더듬어보니 11월 12일.


그리고 일요일이다. 일요일. 루브르의 목요일과 베흐씨의 금요일을 넘어, 흐렸던 토요일, 괜찮다 자만했던 토요일. 그리고 다시 일요일.


따스한 목요일과 푸르른 금요일, 그리고 무료한 메쓰의 토요일을 거쳐 결국 내가 마주한 사실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뿐.


공항에서도 곧잘 눈을 감았고, 물을 많이 마셔도 일찍 깼다면 깰까. 결코 한밤중에 깨는 일은 없었던 나는 지금.


악몽에 밤잠을 설치며 깨어나는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우처럼 몸을 만 채 이를 앙다물고 나오려는 눈물을 삼켜내는 내가 너무도 낯설고, 매일 새벽, 찢어지는 듯한 복통에 잠에서 깨어나니 살아 있어도 도무지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아니 영영 괜찮아질 수 있을까...


책을 수천 권 읽으면서 심리학 서적도 수십 권은 읽었지만, 막상 트라우마를 경험하니 내가 트라우마에 빠졌다는 사실 말고는 확실한 게 없어, 그저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 한없이 무력하다.


다시 끌려간다. 저 어둠 속으로.

저기 아득한 밤이 나를 부른다.

옆구리를 움켜쥐며 생각한다.


'차라리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 당시를 회고하며 썼던 몇몇 글과 다르게 이 글은 일요일 새벽에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옆구리를 잡고 일어나 침대에서 울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쓴 글이라 감정이 많이 격합니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럼에도 다시 읽어보니 감정의 선이 굵게 남아 여전히 잘 읽히지는 않는, 읽고 싶지 않은 글이네요. 이후로도 한 번 더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회복이란 걸 겨우 합니다. 돌이켜봐도 참 고통스러운, 힘든 순간들이었네요.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글로 마주하니 이제는 정말 떨쳐냈구나 싶으면서도 그 순간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에 후회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한가득인데,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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