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16: 통보 없는 귀국
여기 더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다. 손이 덜덜 떨려온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680달러. 수중에 있는 돈의 절반을 쓰게 될 것이고, 한 학기치 학비가 날아가겠지만 괜찮다.
여기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다. 부산에 돌아가 가족을 보고 친구들을 보고 상담도 받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 거다. 더이상 혼자서 버틸 자신이 없다.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나는 돌아가야겠다.
이틀 후, 11월 18일. 금요일. 날짜는 맞다. 이제 동생의 수능은 끝났을테니까 아무리 학기 중이라도 지금은 들어가도 될 것 같다. 11월 18일, 샤를 드골 출발, 상하이 경유, 19일 부산 도착. 크게 혼나거나 부모님이 우실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다. 그러니 돌아가야겠다.
트립닷컴이 조금 더 싼가? 동방항공 홈페이지는 왜 중국어란 말인가. 결제를 해야 한다. 손이 파르르 떨려온다. 눈 앞이 핑 돈다. 죽이라도 조금 먹고 천천히 결정해야겠다. 뱉어낼 게 뻔하지만 그래도 욱여넣어야 한다.
빌어쳐먹을 돈이다. 이토록 힘들고 아픈데 무얼 고민한단 말인가. 밀라노에서의 방삯 7만원이 아까워 목숨을 잃을 뻔했고, 2주 동안 바싹 말라가고 있는 주제 무얼 더 고민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고민해야 한다.
부산에 있는 친구 녀석들 목소리나 들어야겠다. 표를 끊어봤자 이틀을 더 버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고, 그 사이 더 망가지면 모레가 아닌 당장 내일의 티켓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울 수는 없다.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저 담담히 상황을 전하는 거다. 부모님 앞에서 할 말을 미리한다 생각하자.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받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걸어보자.
괜찮냐는 말에 눈물을 왈칵 쏟았던가, 네가 평소 고통을 내색하는 성격도 아닌데 정말 힘들어 보인다며 어서 들어오는 게 좋겠다는 말에, 무엇보다도 너가 우선이라는 말에 감동했던가. 친구 녀석들은 수업도 미뤄가며 이른 아침 걸려온 전화를 오래도 받아주었고, 통화를 마치고 나는 침대에 누워 겨우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완전한 회복은 요원했고, 그 주 다시 세르비아로 떠나는 길, 파리의 전철에서 쓰러질 뻔했지만, 이후 어떻게 버텨내 다시 또 떠나고 떠났다. 여행에서의 공포는 여행을 통해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그저 미리 끊어놓은 비행기표와 열차표가 아까웠을 수도 있지만,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나의 상태는 호전되고 있었고, 그렇게 결국 다행히도, 우리 가족의 비참한 서프라이즈는 기존 귀국일인 1월 5일로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