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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Sep 28. 2024

빵 두 조각으로 이틀 버티기

2023. 11.19: 아프가니스탄 남자와 촛불

그 남자는 다리를 절었는데, 다만 탈레반이 총으로 쏴 다리를 절게 된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세르비아로 밀입국했다고, 이제 두어 달쯤 지나, 아직은 구직활동 중이라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내게 혹시 아는 일자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그런 그의 부탁에 답할 수 없었다. 감히 멋쩍게 웃을 수도 없었다.




세르비아에서의 나는 배를 곯았다. 2주 간 웃음을 곯았던 것에 비하면 이틀의 굶주림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사실, 난 그저 정신없이 떠나온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었다. 베오그라드 공항으로 떠나며, 그리고 착륙하며 변경된 비행 일정을 확인하지 않아 100유로를 내야만 했다.


항공사를 탓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런들 저런들 통장잔고가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줄었다는 사실만은 변치 않아 -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숙박에 털어 넣으니, 지갑이 얇아 굶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달리 없었다.


막상 굶기 시작하니 음식이 간절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사냥감을 쫓는 굶주린 사자처럼 정신이 명징하게 깨어나 도시를 숨 쉬듯 느꼈다.


< 1/2끼. 손목이 얇디얇다 >


파리를 자칭하면서도 정작 부산에서 대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보베 공항에서 2시간 늦게 이륙한 비행기는 비를 뚫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착륙한다.

 

"나는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왔다."라고 출입국 심사대의 경찰에게 항변한다. 그즈음의 나는 열흘 동안 죽만 먹어대고 토해낸 여파로 엄지와 새끼로 손목이 감길 정도로 비쩍 말라 있었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 긴 행색은 비루할만치 남루했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여권은 려권이 아니라 여권이고, 이내 도장과 함께 풀려난 나는 ATM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뽑고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탄다.


돈을 건네니 기사님은 손사래를 치며 버스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킨다. 일단 앉으니, 분주하게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번역기를 이용해 물어보니, 심카드가, 즉 전화번호가 없으면, 티켓을 살 수 없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무임승차다.


덜컥 실려 시내로 간다. 검사한들 벌금 물 돈도 거의 없다는 게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겠다. 하늘은 맑다면 맑다만, 건물은 대부분 잿빛에, 푸르러야 할 창문마저 때가 낀 건지 온 도시가 칙칙해, 80년대 동구권 소련으로 잡혀온 것만 같다. 밀정이 숨어들기에 적합한 도시라 나를 그리도 몰아세웠나 잠시 고민하나 무의미한 물음이다.


< 40번째 국가, 세르비아 >


여우비에 우산 꺼내기를 포기하고 내리는 비를 맞아댄다. 빗방울에 혀를 살짝 내민다. 하늘은 흐려도 비는 달다.


바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저 빨간 신호등 앞에 서 잠시 눈을 감고서는 팔을 툭툭이는 빗방울 하나하나에 온전히 집중한다. 신발 속을 가로지르는 물. 발가락으로 부질없이 밀어내며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걸어간다. 숙소에 짐을 풀고, 눈을 붙이니 밖이 어둑하고, 잠시 여권을 꺼내 나의 40번째 방황을 기념한다.


많이도. 자주도. 떠나왔다. 상념에 젖는다.


밀라노에서 칼에 찔릴 뻔한 이후로 처음이다. 모르는 도시의 밤거리를 홀로 걸어본다.


그 밤처럼 신발끈은 몇 번이나 풀리고, 고개 숙여 바라본 애글릿은 비에 젖어 문들 거리지만, 더이상 나를 쫓아오는 사람은 없다.


간혹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린아이들이 고개를 멀뚱히 돌려 나를 쳐다본다. 밤 11시, 베오그라드의 거리는 식당이 대로변에 늘어선 서유럽의 거리라기보다는 구획화되어 천편일률적으로 나눠진 공산권의 거리라, 걷는 모두가 본질적으로 타인이고, 기계적인 군중의 움직임 속에서 나는 다시금 여행자로서 내가 누려왔던 여유를 찾고야 만다.


도시의 밤은 적막하고, 사바 대성당을 에워싼 길은 탱크 두대는 족히 행진할 수 있을만큼 그 폭이 넓으며, 자정 무렵의 공화국 광장은 황량하게 비어, 나는 마음껏 고개를 숙이고 풀린 신발끈을 묶었다 다시 풀어대다 이내 실성한 사람처럼 우산을 걷어내고 비를 맞는다.


여기 내가 살아서 다시 떠나왔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생경한 삶의 감각을 기어코 되찾고야 말았다.



비 내리는 베오그라드를 정처 없이 배회한다.


거리의 가로등도 곧 꺼질 것만 같고, 문을 연 곳이라곤 기념품 가게뿐이다. 여행자 없는 도시의 기념품 가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소련의 잔재만 희미하게 묻어있는 도시에 파견된 밀정 같은 것이려나.


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은 지도 만 하루가 지났건만 배는 불평치 않고, 식당은 패스트푸드 전문점 몇을 제외하고는 - 그마저도 자정이 다가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 모두 오늘의 영업을 마쳐 나는 배를 곯는다.


내일은 가정치 않는 오늘의 영업, 그것이 무수히 늘어선 저 기념품 가게들이 살아남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유이리라.


호스텔에 돌아오니 TV에서는 대조영인지 대장금인지, 너무 어릴 적의 일이라 본 기억도 없는 한국 드라마를 틀어대고, 소파에 한량처럼 늘어진 남자 둘은 너도 한국인이냐는 듯 계속 고개를 주억이지만, 오늘도 발을 이만 번 넘게 놀린 나는 옷을 갈아입다 그대로 쓰러진다.


깨지 않고, 꾸지 않고 잔다.


열흘 전 밀라노에서 변을 당했고, 메쓰의 기숙사에서는 수십 번도 더 악몽에서 깨어났건만 막상 다시 떠나와 이리 평온히 자는 것을 보면, 나는 천상 여행자인 모양이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늘어져 흘러간다.


하루가 한 달 같아, 이제 조지아의 설산 아래서 잔을 마주쳤던 일은 까마득하고, 밀라노에서의 사건 역시 조금은 멀게 느껴진다. 시간은 흘러간다.


< 승리자 동상 >


다음 날의 나는 호스텔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해 육로로 세르비아에 다다랐다는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다리를 저는데, 괴기하게 돌아간 그의 발목 아래, 그의 인생을 지탱해 온 심지 굳은 발, 고목처럼 대지에 뿌리내린 그의 발에 비하면 나의 발은 새의 발(鳥足)이고, 마저 흐르지도 않는다.


풀린 신발끈을 밟아가며 칼을 피해 도망쳤던 나와 달리, 그는 살아남기 위해, 이미 고치기엔 터무니없이 늦어버린 다리를 '끌고' 저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을 넘고,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을 지나, 불가리아의 평원을 건너 세르비아에 왔다.


아픔은 상대적이라 하지만 그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조족지혈이라 불평할 생각조차 들지 않고,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그에게 안녕을 고한다.


아프가니스탄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더 힘들었다는 그의 말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다시 거리로 나선 나는 한참이고 남자에 대해 고민한다.


내일도 어김없이 공사판에 나갈 것이며, 운이 좋으면 하루 살 돈은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남자의 희망에 대해, 그가 떠나온 탈레반의 나라, 아편의 나라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래. 여행은 마치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같은 것일 터이다. 끊을 수도 없고, 끊어서도 안 되는. 탈레반이 아편을 팔아 나라를 굴리듯, 나라는 비대한 아집덩어리가 굴러가기 위한 필요악.


칼레메그단 요새에 올라, 사바 강과 다뉴브 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거센 요새의 바람을 뚫고 저기 승리자의 동상이 서 있다. 여전히 바람은 거세지만 구름 위로 햇빛은 비춰오고, 저기 분기하는 사바 강과 다뉴브 강처럼, 나는 내일이면 다시 파리로, 어쩌면 그는 언제까지고 희망을 품고 베오그라드에 남아있겠지만, 우리는 끝내 살아가리라.



세르비아에서의 시간은 영문 모를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답이 있었던가.


나의 육신은 부지런히 발을 놀린 대가로 비로소 양식을 갈구하지만, 허기졌던 나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 굳이 돌아올 이유는 찾지 못했으므로, 아니, 돌아오지 않아도 될 만큼 도시를 온전히 느꼈기에 - 베오그라드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떠나간다.


1500 디나르로 이틀을 버티고 떠나간다. 빵 2조각으로 연명했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다.


그즈음의 나에게 1500 디나르는 버리지 못할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삶의 파도는 거세게 몰아쳐 나로 하여금 조지아를 거쳐 밀라노에서 강도를 만나고, 이내 다시 베오그라드로 떠나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는 남자를 만나도록 떠민 것일까. 그도 나도 떠나왔다. 다만 이번에도 떠나가는 건 나 혼자다.


늦은 밤 도착한 베오그라드 공항의 공기는 살을 에이듯 서늘하고,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는 승객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 텅 빈 공항의 천장은 불필요하게 높아, 독일의 게르마니아, 소련의 소비에트 궁전, 북한의 류경 호텔에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 나는 공산주의의 잔재를 찾아 헤매지만, 모든 것은 그간의 고통처럼 나의 상상이 빚어낸 결과일 따름이고, 나는 먼지인지 때인지 모를 얼룩이 덕지덕지 붙은 옷을 입고 악취를 풍기는 공항의 노숙자 옆에서 쪽잠을 잔다.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뜨니 보베, 그리고 버스에선 내리니 파리다.



오늘의 나는 저번 주의 나처럼 파리를 즐겨야겠다. 불안하게만 다가오는 미래도, 고통스러웠던 지난주의 과거도 잊고 파리의 순간을 살아야겠다.


때마침 하늘은 맑다. 튈르리 정원 앞에서 책을 읽다 서점을 들르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아야겠다.



밤이 내리기 전 다시 정원을 찾아 세르비아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남자의 이야기를 네게 들려줘야겠다.



개선문의 나선 계단을 올라 파리의 밤하늘을 비추는 에펠탑을 구경하고, 다가올 새해를 맞아 새 단장 중인 샹젤리제의 거리를 걸어야겠다.


그러곤 다시 한번 떠나가기 위해 내가 떠나왔던 메쓰로 돌아가야겠다.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설산에서의 시간이, 밀라노의 밤과 루브르의 하늘이, 시취 자욱한 라파예트 기숙사 C103호와 베오그라드의 밤거리가.


조지아의 어느 산골마을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렸고, 장화 반도에서 천축국을 향해 달려가던 이탈리아 남자는 나를 "본질적으로 너도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카즈베기에서 나는 눈을 파먹었고, 기꺼이 밤의 인형극에 뛰어들어 가우마르조스(건배)를 연신 외쳐댔다.


그러곤 트빌리시로, 밀라노로 떠나 맥도널드에서 밤을 새우다 강도의 칼에 찔릴 뻔했고, 메쓰에서는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를 피해 도망치다, 결국 스톡홀름 여행을 취소했다.


또 파리로 떠났다 증세가 악화되어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을 뻔했고, 대신 세르비아로 날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밀입국했다는 그를 만났다.


여행에 대해, 떠나감에 대해 생각한다. 설산의 마력에 대해. 밀라노의 밤에 대해. 번뜩이던 은회색 칼날마저 거짓부렁으로 만드는 여행이라는 아편에 대해. 결국 나는 여행이라는 아편을, 그 망각을 사고야 말았던 것일까. 부질없는 생각에 머리가 뿌옇다. 흐리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오랜만에 기숙사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주방의 불을 올린다.


앞으로도 며칠은 새벽 4시 38분에 어김없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날 테고, 사람을 다시 믿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든 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어떠한 예언적 확신이 든다. 완전히 떠나지 못한 사람만이 돌아오고, 지구 어딘가를 헤매이고 있을 이탈리아 남자와 달리 나는 결국 돌아왔으니 삶으로도 결국 돌아갈 것 같다는 그러한 확신이다.


시간의 배율이 달랐던 날들은 이미 흘러갔고, 죽으로 겨우 살아갔던 메쓰의 열흘과 빵 쪼가리로 버텼던 베오그라드의 이틀 역시 지나갔다. 열린 창틀 사이로 스미우는 서늘한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바람이 차니, 발이 시리고, 발이 시리니 문득 아프가니스탄 남자의 뒤틀린 발이 떠오른다. 똑같이 생존을 지향했음에도 사뭇 달랐던 우리의 도주에 대해 골몰한다. 풀린 신발끈을 밟아가며 도망치던 나의 도주는 도피였지만 아픈 다리를 끌고 대륙을 건넌 그의 도주는 분명 투쟁이었다.


모든 아픔은 상대적이리라 변명하며 하나의 불운에 국한된 나의 아픔을 감히 그의 고통, 아니 삶 옆에 슬며시 놓아본다.


그에게 삶은 고통이었고, 고통일 것이다. 기나긴 투쟁임과 동시에 그럼에도 스스로 일궈낼 끝없는 희망의 물결일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베오그라드의 기념품 가게 같은 인생을 남자는 살아낸다.


스치는 바람에도 꺼질 촛불 같이 평범하고 하릴없다. 그럼에도 괴기하게 돌아간 발목 아래, 대지에 뿌리내린 그 굳은 심지는 오래도록 타오르리라. 눈부신 희망과 찬란한 열정으로 삶의 모든 순간을 오롯이 살아가리라. 다리는 절어도 홀로 우뚝 선 인생을 살아가리라.


바람이 차고, 발이 시리다. 11월의 가을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나는 불현듯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여름은 멀고, 달려 나가는 스무 몇의 결혼은 아직 먼 미래라, 나의 삶은 비참 혹은 반항으로 점철되고야 말겠지만 - 또 삶은 고통이겠지만 - 희망을 품고 끝없이 투쟁해야겠다.


바람을 맞으며 나는 촛불을 떠올린다.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는 촛불을. 꺼질 듯 말듯 흔들리다 이윽고 작열하는 그 환한 불빛을. 마침내 다 타 재가 될지언정, 순간을 온전히 태워내는 그 열기를.


어떠한 풍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은 - 끝내 다 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 더 뜨겁게, 맹렬히 타오르는 촛불 뿐이기에, 나 역시 지난 아픔을 태워내고 순간을 살아가야겠다. 심지가 다 타버릴 때까지. 더 강렬히, 더 뜨겁게, 아지랑이처럼 피우고 피워내 나만의 자취를 그려내야겠다.


물이 끓어오른다. 라면을 집어넣고, 다른 냄비 하나에는 물을 부어 쌀을 불린다.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이따금 친구들이 손을 흔들면 의자에서 일어나 팔로 크게 반원을 그려보며 기다린다. 쌀을 안치고, 라면을 먹는다. 내내 죽만 먹다 열흘 만에 먹는 라면은 뜨겁도록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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