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Sep 25. 2024

파리. 전철. 불안감. 떠남의 이유

2023. 11.17: 세르비아로

정신없는 한 주였다. 지난 수요일의 나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미리 계획한 여행을 취소했고, 지난 목요일의 나는 파리에서 루브르의 밤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금요일의 하늘은 파랬더랬다. 그러나, 토요일의 하늘은 흐렸고, 지난 일요일의 나는 죽조차 넘기지 못해 끄윽 대며 변기를 잡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월요일의 나는 수업에 갈 기력이 없어 하루를 침대에서 보냈으며, 또, 화요일의 나는 동생이 수능을 잘 볼 수 있기를 기도하다가 수요일에 이르러서는 당장 금요일에 출발하는 비행 편을 예매하려 했던 것이고, 마음을 바꾼 목요일에는 세르비아로 가기 위해 파리의 전철을 잡아탔다 공황에 정신을 놓을 뻔했다.



해쓱하다. 봉창 두드리듯 구토감이 저 밑에서 치밀어 오르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붙어있는 것만 같다.


어디로 가고 있었더라.


공항이었던 것 같다.


Charles de Gaulle Etoile역, 그러니까 샤를 드골. 프랑스의 전쟁 영웅. 공화국 대통령. CDG. 샤를 드골 공항. 그래. 두 정거장 후에 내리면 되는 건가. 아무래도 내리고 싶다.


눈을 감았다 뜬다. 역이 지나가 버렸다. 토할 것만 같다.


샤를 드골 역에서 내리는 게 맞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북역(Gare du Nord)으로 가야 공항철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아니다. 지금 타고 있는 건 1호선이다. 샤틀레 역으로 가야 하고. 14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나.


그렇지만 지금 내가 타고 있는 게 14호선이 아니었나. 뒤죽박죽. 머리가 아프다. 쓰러질 것만 같다.


그렇다면 샤틀레 역에서 내려서 Charles de Gaulle Etoile. 에투알은 별이다 별. 엄마가 비밀번호로 자주 썼던 것 같은데 그래서 장성이라 별이 붙은 건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루스벨트와 조지 5세는 무슨 관계일까. 제발 나를 그만 봤으면 좋겠다.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저 손을 빼 아무것도 없다고 안심시켜 줬으면 좋겠다.


다 틀렸다. 비행기는 보베 (BVA) 공항에서 뜨니 샤를 드골 (CDG) 공항으로 가면 안 된다. 샤를 드골 역에서 내리면 안 된다. 역 이름이 샤를 드골이지 공항으로 가는 역조차 아니다. 아... 눕고 싶다.


포르테 마일롯 역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 나를 쳐다본다. 옆구리가 쓰라리다.


버스에 타 공항에 가야겠다. 공항에 가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겠다.


< 샤를 드골, 조지 5세, 그리고 루즈벨트 >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옆구리를 움켜잡고 끄적인 문장 하나, 공항행 버스에서 구토를 참아가며 덧붙인 몇 줄. 감히 건드리려 하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의 갈피를 잡기란 내겐 본디 떠나지 않는 일만큼 어려워, 파리의 1호선과 14호선, 샤를드골과 보베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의 자취를 끝내 내버려 두고야 만다.


그렇게 다시 떠난다. 이번에는 세르비아로. 이유를 물은들 답변할 수 없다. 더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머물 수 없어서 떠났다고. 떠나지 않을 수 없어 떠났다고 답하겠다.


수천 권의 책 속에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어 떠났고, 가상의 세계보다는 현실의 세상에서 길을 잃는 게 더 낭만적이라 여겨 밀라노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마주한 세상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 길을 잃었다. 대가는 충분히, 아니 과분히 치렀다.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게워내고 필수적인 배변활동만을 해대니 방은 병실이 따로 없고, 끊어지지 못해 비루하게 이어지는 삶의 악취는 역해 나를 다시금 변기로 내몬다. 탁해진 물을 내리니 깨끗한 물이 올라오는데, 다시 탁해질 게 뻔해 내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하루 한 끼, 힘겹게 끓인 죽마저 토해내니. 퀭한 눈, 밀려오는 악몽의 잔상에 감을 수 없어 뜨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니 살아있는 송장이 따로 없다. 이러니 나는 떠나야만 했다.


병든 몸을 끌고 세르비아로 떠나야만 했다.


이번에도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그간 내가 답을 찾으려 떠났던가. 그저 외면하고픈 현실을 직시할 수 없어 떠난 것 아니었나.


조지아에서 만난 그 이탈리아 남자를 떠올린다.


그는 지금쯤 아르메니아에 있으려나. 혹은 스탄, 땅의 나라, 어딘가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으려나.


"너는 본질적으로 떠나야만 하는 존재인 거야."라고 단언하던 그의 말마따나 나는 떠나야만 하는 존재. 머물지 못하는 존재인 건가.


'본질적으로' 만족지 못하는 존재.


그래서 떠나고야 마는. 정주치 못하는.


여행이 방황의 족쇄라던 그의 말이 귓가에 한참 동안 - 소라 껍데기 속 바닷물결처럼 - 왔다 떠나가기를 반복한다.


< 베오그라드 어딘가. 지하통로 >


세르비아. 티토의 나라, 밀로셰비치의 나라. 민족주의와 폭정에 스러진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죽을 위기를 넘겼다는 것, 그리고 또 훌쩍 떠나왔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 것이 결국 정주치 못하는, 방랑하는 역마살 낀 삶인가 보다.


오늘밤 나는 파리 어디선가 눈을 붙이고, 내일 아침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걷고 또 걸어야겠다.


장대비에 몸을 흠뻑 적시우고, 빵 두 개로 이틀을 연명하다 보면 뭉툭해진 삶의 기도 역시 나를 뚫으려 했던 저 은회색 칼날처럼 벼려지겠다.


그 벼려진 기도로 나아가다 베이고 으스러져도 다시 날을 갈아대, 마지막 파편마저 알갱이 져 튿어져, 버릴 때까지, 한 번뿐인 삶을 꼭 살아내고야 말겠다.


카뮈가 말했던가. 죽음의 부조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음은 내일의 당연함을 가정한 채 살아간다고. '여름'이었던가, '결혼'이었던가, '카빌리의 비참'이었던가. 그 모두가 아니면 '반항하는 인간'이었던가.


11월 중순, 여름은 멀고, 달려 나가는 20대에 결혼은 아직 상정치 못한 미래이니, 아마 나의 삶은 비참 혹은 반항으로 점철되고야 말겠다.


내일의 당연함을 가정치 못하게 된 나의 시퍼런(靑) 봄(春)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봄이 와야 여름이 올터인데, 유럽은 겨우 겨울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부조리를 경험한 젊은은 무엇을 가정한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나를 괴롭혀오고 결국 또 떠나고야 만다.


세르비아로. 베오그라드로. 그리고 또 어딘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