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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Dec 13. 2023

돈의 가치

23년 톺아보기 (2)

우선은 돈.


곤궁한 처지에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다, 때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리다, 이제는 그저 너털웃음 터뜨리며 현실에 순응할 수 있게 되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공항행 셔틀을 사기당해 100달러를 지불한 밤, 튀니지에서 택시를 사기당해 사흘 치 식비 25유로를 날린 밤에는 잠을 못 이뤘다. 돈 없어 사 먹은 1달러치 튀니지 오자(Ojja)에 딸려 나온 단무지는 썼고, 호스텔에서 사귄 채식주의자 친구가 어설프게 조리해 준 가지는 비렸다. (미안하지만, 너무 비렸어...)



여행 내내 가장 고마운 친우는 아마존발 신라면이었고, 빵 몇 쪼가리 혹은 감자칩 몇 봉지로 버틴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룩셈부르크, 모나코에서의 식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하루 정도는 가볍게 굶었다. 8달러라는 가격에 눈이 돌아가 예약했던 니카라과의 호스텔에서는 단 하룻밤에 모기에게 45번 뜯겼고, 우산이 무용했던 열대폭우를 뚫고 나소 공항에 도착하니 수건 두 장으로도 물기를 모두 닦아낼 수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산호에 뒤꿈치가 갈려 뚜벅이면서도 하얀 택시를 잡아타는 대신 2시간을 하염없이 절뚝였고, 코스타리카에서는 폭포를 보겠다며 산을 돌아가는 찻길을 3시간 동안 올라가다 경차에 치일 뻔했으며, 우버 부를 돈이 아까워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던 바하마의 도로를 물 없이 3시간 걷다 휘청였다. 1시간 이내의 거리는 걸었고, 물 한 병 없이 2~3시간의 여정을 버텨내는 일이 허다했다.



맥도널드에서 하룻밤을, 야간버스에서 3일 밤을, 공항에서 21일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안티구아의 2만 원어치 라멘에 만족하지 못했던, 플로리다에서 떠나버린 비행기와 게으른 항공사 직원에 분통을 터뜨렸던 아이는 어느새 베오그라드에서 1000원짜리 빵 하나로 하루를 버텨내며 바질맛 웃음에 허기를 띄워 보냈고, 50유로 숙박을 사기당한 스트라스부르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 군중의 온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다 보니 살아졌다.


돈으로 조금의 여유를 살 수는 있으나, 결국 그 여유에, 아니 사실 삶의 사소한 순간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고민해 보면 참으로 간단한 - 간단해서 쉽사리 외면하기 마련인 - 행복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돈은 내가 순간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핵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실로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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