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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pr 12. 2024

닫힘 버튼 없는 엘리베이터

유럽과 여유

<ㅣ>


어릴 적부터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멍청이가 엘리베이터 문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가?" 하는 의문은 그런 내가 오래도 간직했던 질문이었다. 


닫히다 못해 안팎으로 휘청이는 상가 문도, 바람 부는 날이면 쾅 닫혀 간담을 서늘케 했던 내 방문도, 재미랍시고 핑핑 돌렸다가는 궁둥이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회전문도 아닌, 스르르 열렸다, 스르르 닫힐 뿐인 엘리베이터 문에 누가 끼는 것인가, 사람이 어찌 그리도 한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얕은 생각을 초등학교 2학년까지 했었다.


당시 아버지께 여쭤보니 어린아이들이 많이 다친다고는 하셨는데, 답을 들었다 한들, 문틈에 끼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쉬이 연상이 되지도, <ㅣ>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워, 엘리베이터에 끼인 사람을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부풀려진 소문 정도로 취급했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에는 압력을 받으면 문이 열리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가끔 나와 동생은 엘리베이터를 13층까지 부르곤, 손을 슬쩍, 발을 슬쩍 끼워넣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3학년에 올라가 인터넷 사용법을 배운 후 우연찮게 사고 영상을 접하며 찜찜하게 - 나의 무식함에 죄책감을 느끼며 - 의문을 해소했었다. 


더불어 급한 성정의 한국인이라면 열림 버튼 대신 닫힘 버튼을 누르는 일도 더러 있을 터이며, 본의 아니게 닫힘 버튼을 눌러 끼는 일도 있겠다 생각했다. 


며칠 전 아침, 프랑스에 위치한 분교의 엘리베이터를 타며 초등학교 2학년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3분 후가 시험이라 빨리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에는 닫힘 버튼이 없었고, 발작적으로 누른 버튼에 문이 다시금 열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문 닫히는 데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1층에서 3층까지 걸어 올라온 친구가 마지막 층계를 밟고 있었다.


열림 버튼이 실제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다릴 시간을 벌어줄 뿐인데, 고층으로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설계된 엘리베이터에 열림 버튼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정작 시간을 절약해 줄 닫힘 버튼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험을 친 후, 프랑스 친구에게 하소연하니 돌아오는 말은 "C'est la vie (그게 인생이지.)"


썩 틀린 말은 아니었고 (맞는 말도 아니지만),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화를 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어느덧 46개국을 여행했지만, 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더 느긋하게 살아간다 느껴지는 이탈리아에서는 애당초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기억이 없다.)


문득, 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문 닫히고 올라가는데 3층 올라가는 시간이 소요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의 나라에서는 손가락이 문에 끼이지는 않겠다, 끼일 뻔한들 손쉽게 빼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그들의 속도에 몸을 맡기면 나마저 나태해지는 기분이고, 분통 터질 때도 있지만, 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의 인생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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