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Apr 08. 2024

눈물 흘리던 파리의 여인

파리의 전철, 여인의 눈물


지난 11월 즈음의 일로 기억한다. 10월인 것도 같지만, 9월 말 튀니지를 찾은 후로, 그리고 11월 이탈리아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파리를 찾은 바가 없으니 11월의 일일 것이다.


전 주의 사정으로 스톡홀름 여행을 취소한 당시의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했다.


하루 정도 짬을 내 파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는 것과 주말 내내 메쓰에 머물며 가을 방학 동안 미룬 과제를 처리하는 것.


어떤 이유로든 차마, 도저히 공부를 할 기분이 들지 않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일상이니 학업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 아니었을 터.


이미 사놓은 파리행 버스표가 아까웠을 것이고, 너는 책을 좋아하니 셰익스피어 서점에 한 번 같이 가보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에 홀라당 넘어갔을 거다.


(책을 좋아하는 여자를 좋아하고, 굳이 구질한 변명을 덧붙이자면, 성별을 불문하고 도서관 혹 서점에 가자는 제안은 거절한 기억이 없다.  참고로,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고, 불리한 일은, 자주, 솔직히, 의식적으로, 까먹는다.)


그럼에도 전날까지 갈팡질팡 결정을 미루다, 자기 전, 오후 3시 셰익스피어 서점 앞에서 보자는 문자를 남기고 떠났더랬다.


십 초도 되지 않아 온 답장이라 하면 거짓말이고 30분 후에 온 답장은 “A demain. (내일 봐.)"


느낌이 좋았다.




가는 길에 버스 타이어가 터지고 장대비가 쏟아졌던 걸 생각해 보면, 그리고 평소 약속 시간, 특히 첫 만남에서의 약속 시간 준수를 철칙으로 삼는 내가 결국 13분 늦게 도착했음을 돌이켜 보면, 시작부터 삐그덕거릴 관계가 분명했고, 이 놈의 비틀린 인생에 기우 따윈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 와서 왜인지 몰라도 기억에 남는 건 나를 쳐다보다 이내 눈물을 흘린 프랑스 여자 하나였다.


계획대로라면 버스는 13시 20분에 파리 베흐씨 센 정류장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교외 전철 RER을 탄 후 지하철로 환승해 14시 근처 역에 내리는 일정을 구상했으나 베흐씨 센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4시 20분경이었고, 어쩌다 보니 역방향의 전철에 올라타 시간을 일각 정도 허비했다.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시 전철을 잡아타 한 정거장을 지나친 후 또각이는 굽소리에 앞을 쳐다보니 웬 백인 여자 하나가 창문을 보며 서 있었다.


지하 구간을 지나치는 중이라 밖은 검었고, 차창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얼굴뿐이었는데, 그녀는 오래도 멍하니 그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빈자리를 남겨놓은 채 서성이는 묘령의 여인...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신경이 쓰였다.


굽이 높은 검은 부츠와 검은 스타킹, 가을낙엽 같은 갈색 치마, 검은 단추 세 개 달린 버버리 코트, 그리고 하얀 니트와 옅은 하늘빛의 셔츠를 입은 여인. 포멀 하면서도 파리지앵의 맵시를 지향하는 옷매무새와 팔에 끼운 검은 서류가방, 그리고 삐죽 튀어나온 서류로 가득 찬 파일 하나. 베레모를 쓴 채 파리 길가의 카페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으면, 지나가는 남자들이 고개 돌려 바라볼 법한 매력적인 여인.


그럼에도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번진 마스카라의 짙은 음울이 묻어나 있었고, 머리끈을 입에 질겅 물고 대충 묶은 듯한 머리와 완전히 잠그지 않은 부츠의 지퍼, 무엇보다도 눈 아래 드리운 음영으로 미루어 보건대 여인은 가지런치 못한 서류더미 같은 인생을, 인생은 몰라도, 하루를 버텨내고 간신히 열차에 오른 듯했다.


14시 30분은 휴식을 중시하는 프랑스인이라 해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에, 방금 해고라도 당하고 서류를 챙겨 나오는 길일까 싶었지만, 둥그런 금빛 원에 사각형 패턴이 사슬 그물처럼 내려오는 귀걸이를 찬 그녀는 약지에 낀 반지를 감아 돌리고 있었다.


열차가 지상으로 올라와 한 정거장을 더 지나쳐 가고 다시 사람들이 탑승하자 내내 창밖을 바라보던 여인은 이내 몸을 돌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책에서 사람의 미간 사이를 응시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문구를 접한 적이 있다.


그와는 사뭇 다른, 영혼이 둔중하게 패이는 듯한 시선이었다. 물끄러미 그러나 분명히 진득하게 들러붙는. 심연의 골짜기로 떨어져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과 그 아래 녹진한 진창이 무너지며 합쳐져 헤어 나올 수 없이 아득한, 마주할 수 없이 공허한 시선을, 칠흑 같이 검은 눈동자에 담아, 나를 바라봤다.


에이듯 관통해 찔러오는 시선을 묵묵히 받아낸 지 1분이나 지났을까, 그녀의 왼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어 그녀의 볼을 따라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울던 그녀는 마주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반지를 돌려 뺐다. 서러운 침묵. 영혼이 흐느꼈다.


휴지를 찾아 가방을 뒤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던 나를 다시 현실로 되돌린 건 도착을 알리는 기계적인  "La prochaine station est Saint-Michel Notre-Dame." 방송.


열차는 정차했고, 작게 그러나 또렷이 


“The sun will rise again tomorrow.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예요.)”


라는 말을 던진 후 내리는 나를 둥그렇게 뜬 눈으로 바라보던 여인을 떠나보냈다.


그렇게 서점을 찾아 친구를 만나고 센 강변을 걷다 보니 파랗게 개인 하늘에 자홍빛 노을이 내려앉았고, 나는 내일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고 웃음 지으며, 파리 어딘가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그녀를 떠올렸다.




15년 전 아파트 도서관에서 읽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문장이 그 순간 떠올랐던 이유 같은 건 찾을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다만 조용히 그러나 서럽게 울던 여자가 가여웠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뿐, 실제로 도움이 되었으련지조차 알 수 없다.


Les yeux sont le miroir de l'âme.


눈은 영혼의 거울이고, 그렇게 모르는 여인과, 눈물 흘리던 여인과 한참이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던 기억은 선연히 남아 파리를 찾을 때면, 몽마르트 언덕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뤽상부르 공원 분수에 일렁이는 흐린 하늘의 잔결을 훑으며 가끔 그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지난 겨울, 프랑스의 하늘은 대체로 흐렸고, 청명한 날은 손에 꼽지만, 봄은 다가오고, 오는 5월, 푸르른 파리를 찾을 나의 하늘도, 이름 모를 그 여인의 하늘도 이제는 밝기를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