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와 남극 사이
11살, 그러니까 2011년의 일으로 기억한다.
당시 조선업계가 활황이었던 것인지, 2008년 금융위기 때 돈을 밀어 넣어 한 밑천을 당기셨던 것인지, 소득의 70%에서 90%를 저축했던 생활에 지치셨던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즈음의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내 주요 여행지는 다 돌아본 데다,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네 살 터울의 둘째도 - 대부분의 시간을 유모차에 앉아서 - 미국 여행을 무사히 마쳤기에, 부모님 역시 아이들의 경험을 좋은 이유 삼아 떠나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개학하기 전 2월 무렵 - 토요일로 기억한다 - 식탁 의자에 앉아 무엇인가를 의논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대뜸 다가와 나와 동생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너넨 타히티랑 남극 중에 어디를 가고 싶니?”
‘동물의 왕국’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남극?
어린 내게 남극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멀게 느껴져 고개 들어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타히티는 또 어디란 말인가, 이후 서머싯 몸이 쓴 ‘달과 6펜스’를 읽기 전까지 그 어느 매체에서도 접한 바 없는, 섬인지 나라인지도 모를 그곳.
“타히티는 작년에 다녀왔던 뉴칼레도니아와 비슷한 곳이란다.” (뉴칼레도니아는 또 어디서 찾으셨던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날의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동생 녀석의 말똥한 눈동자와 다시 뒤돌아가 이야기를 나누셨던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
다음 날 등교 후 친구들에게 남극을 간다며 자랑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름방학을 맞아 결국 타히티로 가게 되었을 때, “남극은?”이란 질문을 마음에 담아두었는지, 말로 내뱉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렇게 떠난 타히티는 환상적이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지만, 수상가옥에서 바다로 다이빙하고, 상어 및 가오리 떼와 수영하다가도, 가끔 해먹 아래 모래에 숨겨진 동전을 찾아보고, 빵 부스러기로 고기를 유인하려 애를 썼다. 흑진주 쇼핑에 나섰던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셨다.
남극행 크루즈 티켓이 인당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가량 하고 타히티 여행에 쓴 총액이 그 정도였다 하니 나름의 가성비를 챙긴 여행이었을까. 타히티에서의 우리는 타히티를 즐겼을 뿐, 남극에 대해 별달리 생각지는 않았다. 타히티만으로 충분했다.
그런 내가 남극에 가야겠다 생각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팔라우의 해파리 호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등 여행 버킷리스트를 쓰다 떠오른 그곳.
아침 일찍 일어나 수학 공부를 하다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님이 게시한 남극 여행기 영상을 봤다.
화면 너머의 그곳은 이질적으로 벅차올라 나는 언제 이 광활한 지구의 한쪽 극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때 우리가 남극으로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영상은 그 많은 친구 중 남극에 가자 하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친구가 없었다고, 둘이서 안지 수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꿈을 실행해나가고 있다며, 마무리하지 말자는 노홍철 씨의 이야기를 담으며 끝이 난다.
어디든 혼자 훌쩍 떠나기를 주저치 않았지만, 3, 4천만 원을 덜컥 낼 수도, 모르는 사람과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하나의 방을 공유할 의향도 없기에 아직은 그리고 당분간은 요원할 남극 여행.
살다 보면 나 역시 “타히티랑 남극 중에 어디 가고 싶어?”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더 나아가, “그냥 둘 다 가지 뭐.”라고 말할 시간과 여유를 갖출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