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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r 11. 2024

카이로, 방랑벽의 끝

봄방학을 회고하며


척박한 대지, 바람이 깎아낸 시나이 반도의 거친 산세 너머, 굽이치다 끊긴 생명의 자취를, 지류의 끝을, 아득히 명멸하는 노을과 내리 앉는 사막의 밤을 눈으로 따라 쫓다 샤름 엘 셰이크에 착륙했다.



공항은 한산했고, 거리는 조용했으며, 이따금 지나가는 행인 몇이 느긋이 손을 흔들어 보였을 뿐, 리조트 여럿이 들어선 휴양지 마을의 토요일 저녁은 따분할 정도로 여유롭고 또 비현실적으로 적막해 바람에 실려 사라질 사구와 같았다.


금빛 장신구들이 붉은 실타래와 뒤엉켜 반짝이고, 홍해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이 섞인 파스타가 따스했기에. 사막의 마력에, 밤바람의 신기루에 자연스레 매혹된 것이 화근이었을까.


메마른 땅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억척스러움을 간과해서는 안 됐던 걸까.




잘못된 정류장에 정차했음에도 돈을 더 달라는 택시 기사와 실랑이하고, 짐 실을 돈을 주지 않으면 탑승이 불가하다는 억지를 돈으로 무마한 후 버스에 얹혀 8시간을 달려 보니 카이로는 아침이었다.


하나만이라도 사달라는 장사꾼들을 뿌리치고 기름값을 대신 내거나 길 복판에 내리라는 우버 기사를 타이르며,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13층을 기어올라 겨우 방문을 여니 물이 나오지 않아 몸을 씻을 수 없었다.



박물관을 찾은 날, 경찰에게는 돈을 뜯겼고, 기자로 향한 날, 가이드에게 건넨 돈은 순식간에 관리직원에게 줄 뇌물로 둔갑했다. 첫 호스텔에서는 물이, 두 번째 호스텔에서는 전기가, 세 번째 호스텔에서는 와이파이가 끊겼고, 그에 발맞춰 내 심력도 투두둑 끊어져 갔다.


공연 예매를 위해 위성 신호를 잡으려 횡단보도 없는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며, 매캐한 먼지를 한껏 들이 마시니 내가 살아있기는 한 것 같았다. 귀를 찌를 듯 울려대는 경적들. 가래에 섞인 피. 대통령 궁 주변을 배회하며 창을 새로 고치다 문득 달력을 보니 떠날 날이 내일이었다.



기뻤다. 몰골의 남루함에 비례해 시간도 흐르고 있었다. 떠나는 게 반갑다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카이로를 찾아 꿈에 그리던 피라미드를 보고 낙타를 탔다. 투탕카멘의 마스크와 람세스 2세의 석상을, 라호테프 부부의 눈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저녁 6시면 침대에 누워 자정까지 비자발적 단절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읽고 고민했다.


이번 여행은 경험보다는 사색의 여행이었고, 내가 여행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 카이로의 모래먼지처럼 텁텁한 맛의 -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 덩그러니 자라난 어린  벚나무 한 그루를 밀라노 근교에서 보았다. 평생 제자리 서서 꽃 피울 그 찬란함에 반성하며, 내가 떠나온 그곳으로 돌아간다.


한 곳에 정착해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난 내심 방랑벽의 끝을 바랐던 것 같다.


떠나지 않을 곳, 머무를 곳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으나, 다시 떠나지 않을 곳을 하나 찾은 게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려나.



그것마저 아니라면, 어느 여행과 같이, 어디가 아닌 무엇이, 무엇이 아닌 누구가, 함께할 누군가 결여된 혼자만의 외로운 여행 - 고독으로 포장된 – 에 내가 질려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 걸까.


여행하고픈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나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징글징글한 여행의 끝, 돌아가 마주할 방은 터무니없이 크며, 덩그러니 놓인 퀸 사이즈 침대는 호스텔의 그것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배가본드. 사람은 어디로 떠나가는 것일까 누구로 떠나가는 것일까.


결국 답은 하나. 더 읽고 더 쓰고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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