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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r 08. 2023

산타 크루즈 섬 입도

갈라파고스: 산 크리스토발  ->  산타크루즈

22. 12. 24: Day 9,


뱃삯 30달러. 수상택시 1달러. 입도비 1달러.


얇디얇은 배낭여행자의 지갑을 거덜 내는 갈라파고스에서 명심, 또 명심해야 할 점은 공짜가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흥정이 불가능한 페리 정도야 두 시간 물살을 헤쳐 다른 섬으로 날라주는 비용이라며 애써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고작 1분 거리를 움직이고 짐을 하역한 대가로 1달러를 요구하는 수상택시의 뻔뻔함과 매번 챙겨가는 입도비는 언짢기 마련이다.


티켓을 주길래 고이 간직만 하면 재입도시 비용이 면제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갈라파고스는 여행자에게 그리 만만한 섬이 아니라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환경을 보호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면, 지류 티켓 발권은 중단했으면 한다. TCT 카드의 경우 분실 위험이 크고, 입도 시 주는 종이 티켓의 경우, 길거리에서 나뒹구는 모습을 몇 번 봤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하니 화상 부위의 상태가 어제보다는 호전되어 있었다. 다만 발뒤꿈치는 여전히 갈라져 있었고, 냐게 정상적인 걸음걸이를 허용치 않았다. 한 발은 두루미처럼, 다른 한 발은 영장류처럼 사용하며 걸으니 그 모양새가 꽤나 괴이했다. 어찌 됐든 조금 더 빨리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호스텔에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한 후, 사진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시로 배가 섬과 섬을 오갈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배는 하루에 두 편, 오전 7시와 오후 3시에만 운행했고,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마저도 오후 편 밖에 없었기에 호스텔에서 시간을 때웠다.


< 간단한 조식 >


한참을 미적거리다, 2시경 호스텔 밖으로 나와 선착장으로 향했다. 데스크에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 후 40분 정도를 기다리니 이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경찰들이 줄 설 것을 주문했다. 정박되어 있는 배가 선착장으로 다가와 바로 탑승하는 것이 아닌 자칭 '수상택시'(수상택시는 얼어 죽을. 미니보트겠지)에 탔다가 다시 배로 갈아타는 시스템이었는데, 적은 돈이더라도 추가로 내야 한다는 사실이 언짢았다.


경찰도 뒤따라와 배에 탔는데 구명조끼 착용 여부를 확인한 후 사진을 촬영해 갔다. 선원에게 물어보니 수개월 전 구명조끼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일행 4명이 배에서 튕겨나가 죽은 이후, 안전 관련 절차가 철저해졌다고 했다. 더불어 멀미하기 십상이니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나을 거라는 조언을 건넸다.


사람이 배에서 튕겨나갔다니... 말이 되는가 싶기는 했지만, 혹시 몰라 선미가 아닌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자에 매달린 봉지로 미루어 보건대 풍랑이 거세기는 한 모양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섬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할 때 즈음, 선원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체감하게 되었다. 갈라파고스 360 투어 당시 선미에 걸터앉아 전자책을 읽던 내게 페리는 바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고 싶기라도 한 듯 전후좌우로 요동치며 물을 "뚫고" 지나갔다.


선원이 조언해 준 내용과 달리 수면을 취하기가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머리가 등받이에 붙는 것은 바랄 수도 없었고, 다만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몸을 겨우 붙들 수 있을 따름이었다. 옷에 땀이 찼다. 고개를 돌리면 좌석 옆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파고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몇 번이고 창을 덮을 정도로 그 기세가 사납고 맹렬했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뒷자리의 모자와 달리 멀미는 경험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용을 너무 썼던 탓인지 섬 근처에 도착해 배가 속도를 줄이니 그제서야 근육이 땅겨왔다.


그렇게 롤러코스터에 실려 나아가기를 두 시간, 배는 산타 크루즈 섬에 도착했다.


지도에서 크리스마스 섬과 산타크루즈 섬을 짚으며, 크리스마스 때 한 번 가보겠다는 철없던 어린 시절의 다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Santa라는 말이 겹친다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반드시 가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하고 어이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때는 그랬었다ㅎ)


바로 숙소로 향해 휴식을 취하겠다는 내 계획은 기분 좋은 손님들의 등장으로 인해 약간 연기되었다. 선착장 아래로 황금소코가오리 여러 마리와 아기상어들이 지나갔고, 뒤이어 바다 거북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다사자와 갈라파고스 붉은 게만이 즐비했던 산 크리스토발 섬과는 사뭇 다른 경관이었다.  


< 귀여운 가오리들 >


수상택시 이용비를 내고, 또 한 번 입도비를 내고, 캐리어를 털레털레 끌고 20분을 걸어 숙소로 향했다. 호스트 아저씨께서 몇 년 전 KOICA 관련 한국인들이 방문해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며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짐을 풀고, 섬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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