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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pr 20. 2024

조지아 산골에서의 하루

2023. 11. 01: 잃어버린 시간

긴 산행을 마친 다음 날의 기억은 드문드문 끊겨 있다.


일어나 과제를 해치웠던가, 저녁까지의 시간은 또 어떻게 흘려보냈던가. 숙소 2층 방문 앞 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멍하니 설산을 바라봤던가, 어느새 뵌 지 1년이 넘어가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던가. 어제였던가, 오늘이었던가. 공기 맑은 산골에서의 하루는 평온해 시간의 호흡을 짚어낼 수 없다.


모두가 뒤틀린 시간대를 살아간다. 말이 통하지 않는 주인장 할아버지는 며칠째 집 수리에 여념이 없고, 어제였나 그제였나 고된 산행을 함께 한 화려한 스웨터의 남자는 일어나 보니 오간 데 없으며, 저편 침대에는 중국인 하나가 늘어져 있다. 모레 떠나겠다던 남자의 말이 떠올라 휴대전화를 켜보지만, 간밤의 추위를 이기지 못해 방전된 모양이고, 더욱이 나는 내가 맞이한 것이 오늘의 아침인가 내일의 아침인가 알 수 없게 된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 본다. 초등학교 4학년의 어느 봄날, 3교시 수학 시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데카르트의 일화를 떠올린다. 천장을 날아다니며 옮겨 붙는 파리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좌표계를 고안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공간 좌표계를 가르는 데카르트의 명민함과 시간 좌표계의 축 하나 짚어내지 못하는 나의 한심함이 이루는 대비가 무척이나 선명하다. 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마을은 고요하고 인적은 드물다.


마당에 앉아 연삭기로 돌을 갈아대는 일꾼은 말이 없고, 계단을 올라가다 마주친 집주인의 아들 역시 빙긋 웃을 뿐, 이내 시트를 털러 떠나간다. 고양이마저 가르랑거리지 않는 낮은 아침의 적막 속, 이른 노동으로 노곤해진 할아버지는 꾸벅꾸벅 졸며 물끄러미 능선을 훑는다. 투욱 투욱,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 흔들의자에 앉아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지긋이 두드린다. 산에 드리운 주홍빛 장막이 걷힐 무렵 시작되는 마을 주민의 하루. 매일이 월요일만 같다.


일상의 지겨움을 한탄하며 떠나온 사람들은 이곳 코카서스의 지붕 아래 여장을 풀고 산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주인은 말이 없고, 어디까지나 떠드는 것은 객뿐.


객방 손님의 하루는 스미는 한낮의 열기에 굴복하며 시작된다.  둘러맨 이불을 걷어차고,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침대를 방황하다, 모서리로 밀려나 몸을 만 후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그리고 한참 후에도, 여전히 뭉그적댄다. 매일이 일요일만 같은 그들의 얼굴은 간밤의 숙취로 누렇게 떠 있다.


해가 비탈을 넘어올 때 즈음해 시작된 나의 하루는 월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멈춰 있다. 화면을 켜 일자를 확인해 보니, 때마침 목요일이다. 목요일 오후 2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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