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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pr 23. 2024

장화 반도 떠나 천축국으로

2023. 11. 01: 산의 마력

식기와 그릇이 부딪히고, 왁자지껄한 중국어가 귀를 때려 잠에서 깨니 해가 중천이다.


부엌이 부산스럽다. 가만히 앉아 복도를 타고 방으로 넘어오는 대화를 엿듣는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단어로 추정컨대, 오늘 저들의 식단은 소고기 피망 볶음과 밥.


중국인 여자 하나가 숟가락은 찾았으나 젓가락이 없어 포크를 사용해야 한다며 성을 낸다. 이미 수일은 머물렀을 터인데 여전히 불평하는 걸 보아하면 ‘본질적으로’ 여행자는 만족지 못하는 존재다.




어제 만난 이탈리아인 남자를 떠올린다.


피자 자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듯,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파이를 등분하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밀라노에 살지만, 본디 나폴리 출신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는 등 구부정한 할머니 두 분이서 운영하는 조지아 전통 식당에서 킨칼리 여럿, 버섯치즈전병 대여섯 개, 그리고 전통 수제 파이 하나를 먹어 치웠다.


거대한 홀을 모방하듯 일렬로 늘어선 연회용 식탁의 끝, 벽난로를 사이에 끼고 상석에 앉은 여행자 둘의 행색은 남루하다. 흙 묻은 외투를 벗었다 한들, 기름 번들거리는 머리카락과 몸 배어든 쉰내는 가릴 수 없다.


몰락한 남작가의 꾀죄죄한 하인 둘이 남작의 출타를 틈타 존재하지도 않는 전훈을 읊조리고 영웅담을 늘어놓는 것 같다. 정복을, 정상을 꿈꾸지만, 한없이 보잘것없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맥락에서도 닮았지만, 무엇보다도 모처럼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밀어 넣는 저 우악스럽고도 거친 손길이 그러하다.


접시에 코를 박은 채 킨칼리를 해치우고 나서야 멋쩍게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 짓는다. 장작이 타오르는 것만 같던 벽난로는 다시 보니 잿더미고, 샹들리에라 여겼던 전등은 희미하다 못해 어두워 기다란 식탁에 음영을 드리운다.



“한국에서 왔다고 그랬나”


고개를 끄덕이자,


"본질적으로 너도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존재인 거야." 포크로 전병을 입에 밀어 넣으며, 단언하는 그.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조용히 있으니, 이를 무언의 동의로 간주한 듯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서 기다려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라며 영문 모를 말을 내뱉은 후,


“내가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라고 덧붙인다.


‘본질적으로’ 만족지 못하는 존재. 그래서 떠나는. 정주치 못하는.




오늘 등정하려던 고도 5,047미터의 설산은 하늘에 엎어질 듯이 높아, 중턱보다는 약간 위에서 - 만년설에 결국 닿지 못한 채 - 해가 질 것이라 자위하며 내려와야만 했다.


정상에 닿지 못했다 한들, 하산했기에 다시 떠날 것이며, 너 또한 떠나게 될 것이라 확신에 차 말하는 그는 그저 떠남이라는 행위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다.


다만 동시에, 그의 기이한 확신에는 예언적 광신이 깃들어 있어, 내게도 떠남을 종용하는 것만 같다.



어둠 내린 창밖, 허여멀건 산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붙인 이곳 역시 그저 스쳐 지나갈 수많은 경유지 중 하나라는, 깨고 나면 다시 떠나갈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울적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간 여행을 다니며, 잠시라 포장했던 방랑자의 삶에 정착한 사람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동시에 삶의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방랑했던 자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며, 온전히 떠나지 못한 사람만이 돌아온다.


침묵이 불편했던 것일까, 혹은 그 자신의 말을 곱씹고 있던 것일까, 잠시 얼굴을 찡그렸던 남자는 인상을 재빨리 고치고선, 아무 일 없던 듯, 2L 페트병에 고이 담은 레모네이드를 권한다.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의 재잘거림에서 목소리의 고저가 읽힌다. 어색하게 웃는 남자는 여전히 잔을 들고 있고, 나는 잔을 받는다. 레몬을 사랑하고 정이 넘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남자가 반드시 나폴리는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남부 출신은 맞겠거니 싶은 게 지금의 유일한 생각이다.


그는 교제한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여자 친구를 장화 반도에 남겨놓고 떠나왔다고 한다. 그의 떠남 이면에는 기다림이 있지만, 나의 떠남은 그저 떠남일 뿐이라는 생각을, 이대로 방황만 하다 피안의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한다.


그렇게 전해질 수 없는 사라진 자들의 이야기, 떠난 후 돌아가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 속 한 페이지로 남는 것도 나름의 멋이겠노라 생각한다.


설산의 진창을 밟으며, 육로로 조지아에 다다른 남자는 땅의 나라들을 거쳐 저 멀리 천축국까지 떠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잔을 마주쳐왔다. 한 병 또 한 병, 밤이 간다.



산의 마력 아래 머무는 여행자에게는 시적 허용이 허락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쳐, 방랑벽의 불씨를 틔울 무책임한 자유가 주어진다.


그러곤 비난할 새도 없이 떠난다. 떠난 이에게 물을 길은 없기에, 이야기 속 그들은 영원히 공작이고 영원히 영웅이며, 늘 정상을 향해 떠나간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곧 치워질 빈 2L들이 페트병 하나 – 텅 빈, 쓰러진 - 가 다이며, 그 하나는 기어이 그의 부재를 – 그 역시 산의 마력에 놀아났음을 – 증명하게 될 터이다.


사진이 바래지고 기억이 아득해지면, 내리는 비와 거센 바람에 밟고 밟아 새겼던 발자국마저 흐릿해지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 나는 오늘 산을 올랐다…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고 올라, 빵을 먹고, 눈을 파마시며, 걷고 또 걸어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 도착해 정상의 요원함을 확인하고 터덜터덜 하산하다 프랑스인 남자 하나를 만나 대화를 나눴었다. 이탈리아인 남자 하나를 만나 대화를 나눴었다.


다만 이 모든 게 ‘본질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고, ‘유희에 어울리려다 농간에 몸을 내맡긴 게 잘못이었다.’ 정도가 설산이 굽어살피는 이 산골 마을에서의 기묘한 시간 흐름을 짚어낼 유일한 길인가 싶다.


어제 설산의 진창을 밟아가며 하산했던 남자는, 장화 반도를 떠나와 땅의 나라들을 거쳐 천축국으로 떠나는 긴 여정길에 다시금 올랐다.


반면, 길을 찾고자 떠난 나는 여전히 산의 마력에 홀려 이곳 카즈베기에 멈춰서 있다.


살짝 눌린 이불과 저기 뒹구는 페트병 하나를 남기고 떠난 남자는 만족지 못해 떠나와, 다시 떠나가는, 정주치 못하는 방황의 굴레를 여행이라 정의했다.


침대에 누워 여행이 방황의 족쇄라던 그의 말을 곱씹는다.


부엌은 여전히 시끄럽고, 중국인 남자 하나가 주전자는 찾았으나 뚜껑이 없어 물이 증발한다며 성을 낸다.


설산에 밤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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