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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y 29. 2024

새벽에 바닷길을 걸었다

아버지의 카톡


“새벽에 제주 바닷길을 걸었다. 알마만인지도 까마듯한데 파도소리를 들었다 너무 좋았다”


지난 주말,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제주로 떠나 새벽녘 바다를 걸으셨다.


드문드문 어머니와 떠나시기도 하고, 우리 가족의 집은 바다와 강이 보듬어 안는 곳에 맞닿아 있어, 바다가 요원한 것도 아니지만,


그간 아버지의 새벽은 고된 일상이 녹아난 단잠에, 혹은 다시 한번의 시험을 준비하는 동생을 위한 기도에, 결국 자신이 아닌 가족에 매여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도 없으셨던 것 같다.


같다고 추정만 할 뿐 확신치 못하며, 확신치 못해 은근슬쩍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넘어가는 게 불효막심한 장남의 일상이나,


그럼에도 아버지의 파도는 나를 철썩 때려, 외면하던 사실을 일깨우도록 종용했고, 나를 저 깊은 곳으로 끌고만 가는 것 같았다.


그때의 이런저런 생각과 “별이 보고프다.” 말씀하셨던 어머니께 느끼는 죄책감은 빈약한 내 언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차후 글로 풀어낼 요량이나


그럼에도 아버지가 단톡방에 공유하셨던 그때의 감상은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여전히 달음박질하는, 그 세대의 아릿한 편린을 담아내 묵직한 울림을 준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먼저 단톡방에 적으셨던 일이 언제인가 기억이 가물한 걸 보면, 그 어스름한 동 틀 녘의 바다는 유독 따스했으리라, 정주치 못하고 떠도는 아들내미 대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뎁혔으리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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