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Aug 29. 2024

공항 노숙 일지

16개국 22공항 29일의 기록

"향후 2년 간 넌 30일의 밤을 공항에서 보내게 될 거야. 더불어, 115번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것이며, 2023년에는 33개국을, 2024년에는 46개국을 여행하겠지."


2022년 12월 15일, 설렘을 가득 안고 푸에르토리코 산후안행 비행기에 오르던 내게 누군가 다가와 내가 앞으로 2년 중 한 달을 공항에서 자게 될 것이고,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며, 10일에 한 번씩 다른 나라를 찾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 취급했을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을 둔 덕분에 21살까지 13개국을 여행했다. 유럽, 미국을 각 2번, 가까운 일본과 중국부터 오지라면 오지인 뉴칼레도니아, 타히티까지 다녀와봤다. 


그럼에도 2022년 12월 20일, 에콰도르 키토의 공항에서 밤을 보내기 전까지 내게 공항은 그저 비행기를 타는 곳 그뿐이었다. 


2020년 11월, 연병장에 쌓인 낙엽을 바라보며, 알랭 드 보통 작 '공항에서의 일주일을' 읽었더랬다. '이 넓은 세상에는 참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아간다.' 정도의 진부한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까. 늘어선 체크인 카운터, 터미널과 게이트로 대변되는 공항의 뒤편에서 바삐 움직이는 종사자들의 모습. 수하물 처리에 얽힌 복잡다단한 시스템. 물론 흥미로웠지만, 결국 책에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사람이었다. '공항'이, 작가의 필력이 셀링 포인트였으리라. 


에세이는 결국 공항이라는 장소의 특이성보다는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의 보편성으로 내게 다가왔다. "코로나가 어서 끝나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2022년 12월까지의 난 공항과 노숙을 별개의 개체로 취급했을 뿐, 같이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배낭여행에 무지했다. 수십 번도 더 탑승교를 밟았음에도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을 관찰하지 못할 정도로 - 변명을 덧붙이자면,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이 주는 설렘과 짜릿함에 취해 - 주변에 무심했다. 


그러나 삶의 기류는 늘 예기치 못한 곳으로 인생을 날려 보내기 마련이고, 정신을 차려보니 (차린 척해보니) 그 미친 사람이 지금 공항 노숙에 관한 글을 쓴다.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미친 듯이 돌아다녔고, 반쯤은 객기로 시작했던 노숙은 이제는 예산 절약이라는 제1 목표와 맞물려 가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2022년 12월 20일 이후 난, 벌써 29 밤을 공항에서 보냈으며, 올해만 해도 남은 시간 동안 3번의 밤을 공항에서 보낼 예정이다. 


지난여름 친구들과 유럽을 여행했다. 당시 마르세유에서의 하룻밤, 그 일정애매해 공항 노숙을 제의하자, "공항 노숙 어떻게 안 할 없을까?"라며 간절하게 물어오던 친구. 이후에 가서는 "공항 노숙은 웬만하면 자제하자."라며 구태여 마디를 덧붙였다. 


녀석의 말을 곱씹어보니, 내게는 당연해진 공항 노숙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책으로 써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공항 노숙에 대한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공항 노숙을 해본 사람은 있어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번을 하는 미친 사람은 나밖에 없으리라 자신한다. 여행 좀 한다는 친구들마저, "넌 무슨 나라별로 공항 후기도 아니고 공항 노숙 후기가 나오냐?"라며 학을 뗐으니. 있다면 알려주시라. 수많은 선잠의 나날들에 공감할 있는 분이라면, 술이라도 부딪히고 싶다. 


29번의 공항 노숙. 그 첫 이야기는 백두산보다 높이 위치한 해발고도 2850m의 키토.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마리스칼 수크레 공항(UIO)에서 시작한다.  


공항 노숙 일지:


2022 (1)

2022.12.20:  키토 UIO


2023 (21)

2023.01.06:  플로리다 FLL

2023.03.22: 플로리다 FLL

2023.03.23:  마나과 MGN

2023.03.26  마나과 MGN

2023.04.14:  디트로이트  DTW

2023.04.22:  클리블랜드 CLE

2023.04.28:  애틀랜타 ATL

2023.05.03:  산토도밍고 SDQ

2023.06.30:  런던 LGW

2023.07.12:  소피아 SOF

2023.08.04:  에든버러 EDI

2023.08.06:  파리 ORY

2023.08.18:  리스본 LIS

2023.09.07:  파리 CDG

2023.09.22:  파리 ORY

2023.10.05:  부쿠레슈티 OTP

2023.10.07:  부쿠레슈티 OTP

2023.10.12:  밀라노 BGY

2023.10.26:  밀라노 MXP

2023.11.04:  쿠타이시 KUT

2023.11.18:  베오그라드 BEG


2024 (7)

2024.01.18:  빌뉴스 VNO

2024.03.06:  밀라노 MXP

2024.05.03:  아부다비 DXB

2024.05.06  인천 ICN

2024.05.25  인천 ICN

2024.08.16  이스탄불 IST

2024.08.19  애틀랜타 ATL

2024.11.27 애틀랜타 ATL (예정)

2024.12.15 플로리다 FLL (예정)

2024.12.31 플로리다 MCO (예정)



작가의 이전글 새벽에 바닷길을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