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Sep 03. 2024

3개 메뉴로 100일 버티기

미국 생활, 2415$와 광기

대략 한 달 후면 미국으로 돌아간다.


여유라고는 없이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지만, 이는 그간 내가 유럽에서 알차게 여행을 다닌 것에 대한 반동이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너끈히 감내해 낼 수 있다.


주는 비싸지만 해결이 될 문제고, 의는 사람 구색만 맞추고 다닐 생각이라 큰 관심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도 미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주저케, 아니 진절머리 나게 하는 것은 식이다.


첫 해의 나는 돈을 아낀답시고 학교 식당에서 주는 사료를 야무지게 받아먹었다.


식당 밥이 맛이 없다는 걸 학교에서도 인지하고 있는지, 이 놈의 학교는 (미리 밝힌다. 애틀란타 소재 Georgia Tech, 53개국을 여행하며 접해본 음식 중 여기 학식이 최악이다.) 1학년은 의무적으로 Meal Plan을 구매하도록 (끼니당 10.85$, 15,000원이면 적은 돈도 아니다.) 강요했고, 1년 동안 철저히 사육당했다.


프랑스 분교로 떠나리라는 나의 다짐에는 혹독한 학교 생활에서 탈출하고픈 나의 어리고 한심한 일차원적 생각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맛없는 음식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해가 안 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냉동된 치즈는 다 녹지도 않았고, 토마토 페이스트는 새벽 4시 쏟아낸 토사물처럼 엎어진 피자를 도대체 왜 내놓는 것인지. 오븐에서 5분만, 아니 3분만 더 돌리면 해결될 문제를 왜 그대로 방치하는지…


아시아식 누들이랍시고 물 탄 간장에 적신 설익은 면을 준다거나 너무도 오래 익혀 씹다가 이가 나갈 듯 한 걸레 같은 고기 뭉텅이를 준다거나…


일일이 열거하면 끝도 없던 학식의 폭정에 질린 나는 결국 학기 말에 다다르자 바나나와 우유를 주식으로 삼았다. 요리하지 않은 날 것이 요리한 것보다 맛있는 곳을 과연 식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주말이면 줄어드는 음식의 가짓수와 회전 따위는 되지 않아 돌도 돌아 바나나를 집어먹어야 하는 상황에 끝나 질려 버려, 아예 기말고사 기간에는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가히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칙필레의 치킨 샌드위치 (심지어 가격도 9-10달러 선으로 더 저렴하다.)로 대부분의 끼니를 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랑스에서 1년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내게 주어진 2학기 치 식비 + 생활비 + 여행비는 600만 원 정도.


생활비라 해봤자 자잘한 필기 용품 등이라 얼마 쓰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는 식비를 절감해야 하며, 정말 다행히도 2학기 치 4800달러는 애당초 600만 원을 초과해 선택지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1학년 2학기의 나는 라면을 80개도 넘게 먹었다. 이번이라고 별 다를까 싶다. 어머니는 건강을 강조하시지만 내게는 일차적으로 돈이 없고, 그 무엇보다도 시간이 없다.


점심과 저녁 피크 시간대이면 괜찮은 음식을 받기 위해 20-30분 기다려야 하는 식당보다는 15분이면 준비, 식사, 설거지가 끝나는 라면을 또 자주 찾을 것 같다. 파스타는 만들어 소분해 보관하고 밥도 냉동밥으로 소분해 보관.


매일 두 끼를 먹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으로 세끼를 먹기에 다음 학기 나의 95%에 달하는 식사는 다시 한번 떠나기 위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라면, 알리오 올리오, 간장계란밥을 다시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신라면 스무 개에 23달러니 네 박스, 여든 개를 쟁여놓으면 92달러.


파스타를 보통 140g 먹으니 1kg가 7끼, 대략 98끼면 14kg, 500g에 2달러. 고로 56달러. 베이컨 한 팩에 4달러가 3 끼니, 33팩이면 132달러. 마늘 까고 썰 시간 따위는 없기에 보내달라 하면 마늘은 해결일 테고, 마지막으로 올리브유는 비싸서 해바라기씨유를 쓰면 2통에 25달러. 총 213달러.


쌀도 마찬가지로 보통 140g 먹으니 14kg. 쌀 5kg에 12달러, 15kg면 36달러. 계란은 한 끼에 두 개씩. 총 200개. 12개에 3달러, 17팩이면 51달러. 총 87달러.


다해서 392달러. 외식 몇 번, 칙필레 몇 번. 그리고 약간, 아주 조금의 야채까지 해서 대략 750달러면 한 학기를 버틸 수 있겠다.


2학기에 2백만 원.


남은 4백으로 남미나 한 번 다녀와야겠다. 여행만이 다가올 100일을 3가지의 메뉴로 버틸 나의 위안거리로 남는다.


어쩌면 매 학기마다 나는 머물 이유보다 떠날 이유를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버텨야지 어쩌겠는가. 이내 훅 떠나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