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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의 재테크

신현정, 신영주

by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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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돈 벌어먹는 게 쉽지 않제?" 첫 학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 아버지가 내게 던진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과학 영재로 선발된 이후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내가 숫제 이과인 줄 알고 살았다. 현실을 자각하게 된 건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집에서 수제 수류탄을 만들고, 항공역학을 실제로 이해하는 친구들(극소수이긴 하다)을 보며 깨달았다. 별처럼 빛나는 찬란한 재능에 나의 알량한 노력을 견줄 수 없음을. 동시에, 항공우주공학에 대한 흥미가 잘해서 생긴 흥미였을 뿐, 타 학문보다 특별히 좋아해서 가진 흥미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차선은 차선일 뿐, 최선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도 그때 자각했다.


구상에서 끝난 소설이 십수 개에, 끼적이다 만 소설이 여럿, 어설프게 마무리한 소설이 두 개 있다. 여행기는 벌써 여러 개 썼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사유, 독서, 작문이고, 일상 역시 다독·다작·다상량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독서 감상문은 내기만 하면 상을 받았고, 친구들 대신해준 문학 과제들도 압도적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 군에서는 번역 역량을 십분 발휘해 휴가를 수십 일 쓸어 담았고, 감사하게도,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도 있다. 웃프게 '사이비 이과'라 자칭하고 다니는 현실을 따져보면, 나의 재능은 문과에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 재수 없는 말이지만 — 지금도 학교에서 그 알량한 노력으로 남들보다 잘하는 게 어렵지 않다. 부모의 그늘,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게 살고 있지만, 졸업 후 사회에 내던져지면 그때부터는 생존이고 투쟁일 것이다. 남의 돈 벌어먹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어려서부터 알아, 돈이 안 되는 문학을 내팽개치고, 흥미를 가졌던 항공우주를 선택한 건 분명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다. 그럼에도 차선을 선택한 게 당시의, 지금의, 그리고 미래의 내게 모두 최선이었고, 최선이며, 최선일 것이라는 역설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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