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 최재천
어린 시절, 고전을 읽는 건 마치 쓴 한약을 삼키는 것만 같았다. '고전'의 고가 '옛 고(古)'가 아니라 '괴로울 고(苦)'처럼 느껴졌다. 자랑하기 위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책을 펼쳤다. 초등학교 때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홉스의 리바이어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고, 중학교에 들어서는 칸트의 비판 시리즈와 로크, 루소, 데카르트의 책을 손에 들었다.
당연히 머릿속에 남는 건 없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페이지를 넘겼다. 시대와 세월이 담긴 책은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마치 쓴 풀을 씹는 심정으로 천천히 소화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여전히 고전을 읽는다.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책들을. 이제는 한 문장씩 뜯어보며, 때로는 걸으며, 때로는 가만히 앉아 구절과 문단, 장(章)의 함의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생각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언젠가는 나도 저러한 고전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