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인
조지아에서 만난 나폴리 출신의 이탈리아인 남자는 사귄 지 6개월이 된 여자친구를 장화 반도에 남겨두고 2년 간의 세계 일주 여정에 올랐다.
"스탄을 거쳐 코끼리의 나라까지 갈 생각이야." 그는 가볍게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땅의 나라들*을 거쳐 천축국까지 갈 요량이군. 장화 반도를 떠나서 말이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이후는?" 내가 물었다.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지. Later problem."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그랬나?"
우리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두 분이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는 포크로 전병을 입에 밀어 넣으며 내게 단언했다. "본질적으로 너도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존재인 거야."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서 기다려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라고 중얼거렸다.
냅킨에 손을 닦고 일어서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여행은 방랑의 족쇄야. 저주일 수도 있고."
돌이켜 보면, 'Later Problem!'이라며 문제를 여유롭게 웃어넘기는 습관이 내게 스며든 것도 그때부터였고, 역마살 낀 삶을 달가운 천형과 함께 살아가리라 어렴풋이 짐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결국 나는 어딘가로 또 떠나고 방랑하며, 쉬이 만족지 못해 한 곳에 정주치 못하리라는 예감, 아니 운명에 가까운 확신.
2년 동안 세계를 누비겠다던 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그를 기다린다던 그의 여자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카즈베기의 황금빛 설산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면, 나는 나폴리의 햇살을 등지고 떠나와 레모네이드를 소중히 안고 다녔던 그 이탈리아인 남자를 떠올린다. 스탄을 지나 코끼리의 나라로 향했던. 지금도 세계 어딘가를 끝없이 헤매고 있을 그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카즈베기의 황금빛 일출.
*기억나는 대로 옮긴 영어 대화 전문 (아마 2023년 10월 29일 혹은 30일 혹은 31일):
I: Stans than to the land of elephants
L: After that?
I: Later problem.
L: You said that you're from Korea?
I: Yeah.
L: Inherently, you are that being who should always leave to somewhere.
L: You know. If there's someone left waiting, there should be another left to be waited.
L: Travel is a chain for wanderers. Or, you know, even a curse.
*스탄은 ~의 땅 혹은 나라를 의미하는 접미사다. 일례로 아프가니스탄은 주요 민족인 파슌투 족의 땅/나라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