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인
독서를 지나치게 우월한 행위로 여기는 시각이, 한국에서 오히려 책 한 권 펼치는 단순한 행위의 진입 장벽을 높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취미의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다소 우스운 일이지만, 유독 독서를 취미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 하다. 조승연 작가 역시 최근 책의 쓸모를 논하는 영상에서, 책이 우리 머리 위가 아닌 '눈높이'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잘 쓰인 책은 여전히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기이자 더없이 좋은 간접 경험의 수단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책은 영화나 다른 대중매체에는 없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책을 최우선 순위에 둘 필요는 없다는 게 다독가로서의 다소 모순적인 생각이다.
군 복무 중 331권, 졸업 후 5년 간 총 1145권의 책을 읽었다. 동시에 전역 후 지금까지 73개국 185개 도시를 여행했다. 두 가지 경험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전자', 즉 독서를 포기할 것이다. 평면적 인식과 입체적 경험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으로도 메꾸기 어렵다.
송나라의 문인인 구양수는 학문의 자세로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강조했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지금의 세대에는 여기에 더해 세상을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다견(多見)과 다문(多聞)도 중요하지 않을까. 분명 사람은 그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허나 그 '읽음'이라는 행위마저 궁극에는 글을 눈으로 보고 저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자 타인의 사유와 경험을 잠시 빌려쓰는 일일 따름이니, 사람은 그보다 먼저 자신의 삶에 아로새겨진 견문(見聞)으로 빚어지는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