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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r 30. 2023

아들아 큰 고기는 맛이 없다

이역만리 땅에서 뒤늦게 떠올린 아버지 말씀. 

2023. 03. 19, Day 2:


"일찍 일어나라."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어제 몇 시에 잤니?"

"늦게 자더라도 휴대폰 사용은 자제하렴." (휴대폰을 쓰기에 늦게 자는 겁니다만?)


졸업 후, 그리고 제대 후 매일 같이 내가 들었던 잔소리들.


돌이켜 보면, 전국에서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낸다는 학교를 졸업한 후 내가 가장 갈망했던 것은 "시간 낭비하기"였던 것 같다. 그 많던 시간에 외국어 공부 혹은 물리 공부를 조금 더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는 하지만, 롯데 야구도 원 없이 보고, 책도 원 없이 읽고, 틈만 나면 맛집을 쏘다니던 후회는 없는 나날들,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난 낯선 타지에서 홀로 아침을 맞을 때, 집에서 멀리 떠나왔음을 실감한다.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집이라는 장소는 어느새 추상적인 관념으로 변해, 손에 쥔 모래처럼 잡으려 해도 흘러내리기만 한다. 


이미 규칙적인 학교 생활이 몸에 익어 알람 없이도, 이제는 잔소리 없이도 7시 30분이면 기계적으로 눈을 뜬다. 나지막이 "오늘도 함 살아봐야지."투의 혼잣말을 내뱉으며 일어나 이불을 갠 후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이 생경하다.


"오늘은 흐리려나." 


애써 스미 우는 고독을 밀어내며, 집에서 부모님이 보내온 멸치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고향의 맛에 뒤섞인 조미료의 감칠맛에 속이 더부룩하다. 


< 아침 >


인조적인 비릿함...

멸치가 그렇지 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행을 떠나면, 대화에 활기가 돌고 소재도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까?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인 조미료의 감칠맛 같은 여행이길 바라고 계실까? 

아니면, 만리타향에서 이리저리 쏘다니는 아들내미가 대견할까?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학교로 돌아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재발할 두피염도, 다시금 일주일에 두 판 꼴로 창자에 박아 넣게 될 피자도. 모두 지긋지긋한 난 칼국수의 비릿함 속에서 희미한 고향 내음을 맡는다. 


'쉼'보다는 여행이라는 잠깐의 '도피'를 택한 내가 집을 떠올리면 드는 감정도 그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현실은 저기 부산 끝자락 강서구 옆에 붙어 있는 용원의 시장바닥 같은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짙은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그 시장 옆에 붙어 있는 김해횟집. 그 벽면의 유명인 사인 같은 것이다. 우리 가족이 가면 가끔 귤 한 봉지나 오징어 한 접시가 서비스로 나오지만, 저기 저 벽면을 메운 사인 다발의 주인공들이 무엇을 받아먹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앞의 시장 길바닥 같은 것이다. 나는 걷고 그들은 지나가는. 달려오는 벤츠 세단이 튀기는 물의 비릿함에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그 사이의 두꺼운 썬팅 같은. 


여튼 그렇게 조미료 덕지덕지 친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며, 내가 알던 칼국수의 맛은 어디로 가버렸나, 또 무엇이었나 자문하게 되었다. 


라면 두 개는 많지 않았나, 허기에 분수를 잠시 착각했었나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라면은 라면일 뿐, 칼국수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 어제의 바다는 맑았다. >


어제의 바다는 맑았고, 오늘의 하늘은 흐렸다. 


수경을 주섬주섬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반 시간을 걸어 해변에 도착해, 물에 몸을 맡긴 채 생각을 비워냈다. 이내 비가 내렸고, 다시 수경을 주섬주섬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반 시간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 변화무쌍한 날씨 >


저녁때가 되어 밥을 먹으러 나갔다.


< 콩크 튀김 >


밀가루가 많았던 콩크(Conch) 튀김은 재료의 신선함이 반죽의 끈적거림을 잡아주었다. 


< 그루퍼 >


그리고 먹은 그루퍼 요리. 퍼석거리는 살에 묽기 그지없는 토마토 기반의 소스. 고기를 나이프로 썰어내고 흐물거리는 소스가 흘러내리기 전에 잽싸게 입에 집어넣어야 하는, 비린, 싯가 35달러의 가치를 전혀 못하는 요리였다. 


큰 고기가 그렇지. 


"아들아, 큰 고기는 맛이 없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큰 고기는 살아남으려 노력을 하지 않기에 작은 고기보다 맛이 없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정확한 맥락도 기억나지 않는 그 말이 어째서인지 머리를 맴돌았다.


맛이 없든 있든 간에, 작든 크든 간에, 나는 모두 잡혀서 인간 놈들 뱃속에 들어갈 고기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큰 고기는 맛이 없고, 작은 고기는 맛이 있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멸치칼국수 속의 멸치든, 35달러짜리 생선 요리 속 그루퍼든 간에, 고기면 비리기 마련이라는 것 아닐까.


< 해가 진다 >


이 모래는 어떻게 바하마까지 흘러들었나.


해가 지고,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비린, 고기 같은, 인생의 또다른 하루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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