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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r 29. 2023

미치고 환장할 샐러드 웨이팅

바하마 전통 콩크 샐러드

2023. 03. 18: Day 1,


휴식을 취하고 나니 잊고 있던 허기가 올라왔다.


바하마에 왔으니 꼭 먹어봐야 할 것은 전통 콩크 샐러드!


발음이 콩(Conch)에 가까운 콩크는 카리브해 인근에서 잡히는 대형 고동으로, 그 쫄깃함 식감이 일품이라 전해 들었다.


당일 잡은 콩크를 요리해 바로 대접하기에 그 싱싱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들었고, 현지인에게 메뉴도 직접 추천받은 터라 기대가 정말 컸다.


마침 숙소에서 15분 거리에 Dino's Gourmet Conch Salad라는 콩크 샐러드 전문 식당이 있었고, 평점도 4.2점으로 무난했기에 침대에서 몸을 빼내 다시 또 걸었다.


< 기다리는 사람들. 좌측 두 번째 남자가 모든 사태의 원흉이다. >


결론적으로 맛을 다 떠나 고객 응대 측면에서 최악의 식당이었다.




만난 대부분의 바하마 사람들이 독특한 억양의 영어를 구사했기에, 애당초 의사소통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손님은 깡그리 무시한 채 수다를 떨어대던 카운터 여직원 세 명이 구사하는 도무지 영어라 취급해 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손짓을 통해 주문한 메뉴. 말이 안 통하니 추가 재료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상의가 불가능했고, 결국 매운 걸 좋아하니 고추를 조금 넣어달라는 선에서 대화를 끝맺었다.


주문을 받는 와중에도 자기들끼리 낄낄대다 주문 내역을 잊어 무엇을 주문했는지 되묻는 것은 덤…


맥주 한 잔과 샐러드 하나 값을 더하지를 못해 계산기를 두들기고… 계산 못하는 사람이야 자주 봤으니 그렇다 쳐도, 결과로 나온 16달러라는 숫자를 3초 만에 잊어버려 다시 계산기를 두들기는 모습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20달러를 건네니 계산기를 이리저리 두드린 후 거스름돈을 5달러 주던데, 계산기에 적힌 4달러라는 숫자도 못 읽고, 일에 집중도 안 하는 사람을 셋이나 카운터에 앉혀놓은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숫자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집중의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손님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카운터의 문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샐러드 제조는 더했다.


칼질 몇 번하고, 컵에 담으면 5분 내로 완성되는 샐러드가 10분, 30분, 아니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았다.


요리(요리라 하기에도 민망하다)를 맡고 있는 사람은 두 명. 칼질 한 번에 손을 한 번 씻는 것 같아 보여,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위생 정신이 투철하구나 생각하며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중 한 명이 나중에 그 손으로 담벼락을 쓸고 담배를 쥐는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사방이 바다라 물 걱정은 없는지, 물을 펑펑 써대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칼질은 해대는데 샐러드는 나오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30분 정도 지속됐고 (보아하니 오른쪽에서 칼질을 하던 여자는 샐러드는 못 만드는 듯했다.) 이미 병마개를 딴 맥주에서는 탄산이 질질 새고 있었다.


더불어 근처에서 잡상인 한 명이 라이터를 팔아대고 있었는데, 며칠은 안 씻은 몰골로 친분을 앞세워 주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식욕이 절로 떨어졌다.


또 10분 정도 지났을까. 이내 왼쪽에서 칼질만 해대던 남자가 담배를 물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탈주했다.


몇 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자, 이미 몇십 분째 대기 중이던 현지인 아저씨들이 열이 꽤나 오르셨는지 카운터로 대뜸 향하더니 주문 취소를 요구하며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던 여자 세 명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통할 리가 없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이번엔 한 손에 맥주병을 쥔 채 차를 끌고 온 아저씨(그렇다. 음주운전…)가 가판대 앞 나무를 들이박기 직전에 차를 멈추더니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Fucking Three Hours를 외쳐대며 카운터로 돌진했다. 샐러드는 못 만드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 직원만이 과일을 썰어대고 있는데 뭐를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한두 시간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래도 흥분을 조금 가라앉힌 듯 의자에 앉아 술을 또 꼴깍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잡상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도망간 직원을 잡아오기 위해 어디론가 떠났다. 며칠은 족히 안 감은 듯 한 머리에 정체 모를 물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셔츠, 그리고 풍겨오는 시큼한 땀 냄새까지. 직원일 거라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남자 직원을 찾지 못하자, 들어가 칼로 재료를 숭덩숭덩 썰어대는 모습을 보니 욕이 절로 나왔다.


아니, 직원이었으면 담배만 멍하니 뻐끔뻐끔 물고 있을 게 아니라, 진작에 안에 들어가 뭐라도 만들면 될 것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참기 어려웠는지 돌아가며 몇 마디를 소리쳤고, 그렇게 대기 시간은 더 길어졌다.


웨이팅 1시간 30분째. 집 나간 탕아가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이 스윽 장갑을 집고는 칼로 재료를 썰어대는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남자가 오자마자 역정을 낸 후 내빼는 잡상인. 보아하니 콩크 손질만 맡는 듯했는데, 분업이든 뭐든 기다리는 손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로컬도 정도껏 로컬이어야지. 문화적 차이는 개뿔. 여유와 무례함, 느린 문화와 게으른 품성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은 같이 기다리던 아저씨들의 반응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샐러드 하나 나오는데 두 시간.


(한국이었으면 진작에 문 닫았다. 최저치로 따지면 한국보다 훨씬 뒤처지는 서비스 질에도 한국과 1인당 GDP가 비슷하다는 게 아프게 다가왔다.)


따져봤자 달라질 것도 없었기에 잽싸게 샐러드를 챙기고 숙소로 복귀했다. 이미 어두워진 길거리. 가끔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어두운 길을 걸어갔고, 결국 발가락을 다쳤다.


< 아오 >


태풍의 영향인지 도로변의 가드레일이 무너져 있었고, 어두운 밤길에 차를 피하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땅에 솟아오른 녹슨 가드레일 지지대 철심에  엄지발가락을 고대로 갖다 박았다. 다행히 발톱이 조금 깨지고 피가 약간 흐른 것 제외하곤 걷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지만, 애당초 샐러드가 빨리 나왔더라면 어두운 밤길을 걷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 생각하니 화가 났다.


< 이거 하나 만드는데 두 시간? >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다. "맛없으면 두고 보자."의 심정으로 비닐봉지를 벗긴 후 샐러드를 퍼먹었다. 양파와 콩크, 그리고 파인애플로 구성된 단순한 전통식 콩크 샐러드.


매웠다. 정말 매웠다. 매운 걸 잘 먹기로 유명한 한국인으로서 맵부심이 조금은 있었으나 송송 썰어낸 청양고추의 알싸함이 방심한 틈을 타 치고 들어왔다.


흔히들 매운 걸 먹고 나면 입에 불이 난다는 표현을 쓰는데, 불이 난다기보다는 혀를 바늘로 찔러대는 듯한 날카로움이었고, 매운맛이 맛이 아닌 고통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세기였다. 얼얼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 매운맛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단순한 구성과 상당한 맵기에도 불구하고 오독거리는 콩크와 아삭한 양파가 이색적인 식감을 선사했으며, 시큼한 소스와 가끔 베어무는 달콤한 파인애플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30분 이상을 기다려 먹을 맛은 아니었다. (애당초 2시간을 기다려 먹을 음식이 존재하기는 할까?)


< 정말 싱싱하긴 했다. >


아침에 라면 두 개를 먹은 이후 쫄쫄 굶었던 내게 샐러드 하나와 맥주 한 병은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라면 두 개를 꺼내 끓여 먹었다.


역시 라면만 한 게 또 없었다.


< 해외에서 먹는 라면은 진리다. >


내일은 온전히 쉬리라 (성격상 또 빨빨거리며 돌아다닐 게 뻔하지만) 굳게 다짐하며 잠을 청했다.


< 어마무시하게 많이 걸었다. >


25km를 걷고, 모든 계획의 세부사항이 어그러진 동시에 전반적인 줄기는 맞아 들어갔던, 수면부족이 유발한 판단력 상실로 고생한, 기묘하고도 평범한, 뭐가 됐든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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