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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Oct 13. 2023

이게 맞나?

첫 치킨 버스 탑승기

"그만 좀 기대소."


니카라과 그라나다에서 산 호르헤(San Jorge) 항으로 가는 1시간 30분, 아니 2시간의 시간은 내게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였다.




니카라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네 곳의 주요 관광지 중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하기 마련이다. 화산에서의 샌드보딩으로 유명한 레온(Leon), 과거의 시간을 살아가는 도시 그라나다, 그리고 거대한 니카라과 호가 품은 오메테페 섬, 그리고 서핑 천국 산 후안 델 수르(San Juan del Sur)까지.


(수도인 마나과(Managua)는 볼 것도 없고 바가지가 심해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다 들었다. )


서핑을 좋아하고 비교적 여행 정보를 구함에 있어 관련된 인프라 - (예를 들어, 서점) - 가 잘 구축돼 있으며, 휴가가 6주인 독일인이야 네 곳 모두를 들르고, 보통은 그라나다를 거점으로 레온과 오메테페를 들르지만 내게는 그 모두를 돌 시간이 없었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 속 내가 선택한 곳은 그라나다와 오메테페 섬. 샌드보딩과 오메테페 섬을 마지막까지 저울질했으나, 적어도 말라리아 지도에 따르면 레온은 모기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모양이었고, 서핑은 배운 바 없기에 결국 그라나다를 거쳐 오메테페 섬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 니카라과 교통 정보. 혹시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


그라나다 교통편 관련 최신 정보가 한글로는 전무하고 영어로는 거의 없다시피 한 데다 믿을 수도 없어 걱정을 많이 했건만, 다행히도 내가 묵는 호스텔에는 관련 정보를 정리해 적어놓은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고, 별 어려움 없이 버스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편하긴 하나 전혀 저렴하지 않은 택시 대신 내가 이용할 교통수단은 치킨 버스.


1시간 30분 거리에 가격도 100 니카라과 코르도바, 한화 약 3,500원으로 저렴했으니 일견 타당한 선택.


치킨을 비롯한 생필품을 운반하는데 쓰였기 때문에 치킨 버스라, 이름도 귀여웠고, 미국에서 통학버스로 쓰이다가 니카라과로 흘러들어오게 된 버스인 만큼,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끔 보던 샛노란 외양을 드러내고 있었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걸어서 정류장까지 가니 버스 여러 대가 서 있었고, 버스 운전기사로 추정되는 아저씨 한 분을 붙잡고 오메테페, 산 호르헤를 여러 번 말하니 어느새 버스에 탑승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첫 10분은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35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와, 켜지지 않고 있던 에어컨은 충분히 우려스러웠고, 내 우려가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발 시간을 이미 훌쩍 넘겼음에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고, 끝내 가능한 모든 공간에 최대한의 사람을 집어넣고 출발했다.



평탄한 길에서도 타이어의 균형이 맞지 않은 것인지 버스는 덜컹거렸고, 평균 시속 40km의 경악할 만한 속도로 기어 다녔다. 중간에 두어 번 가만히 멈춰 섰을 때는 이대로 도로에 갇히나 싶어 노심초사한 건 덤.


내리쬐는 태양 아래, 후텁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숨이 턱턱 막혀왔고, 눈치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털털거리는 엔진의 소음과 멀미에 잠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화소리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리는 만들면 된다는 듯, 계속해서 사람들이 치고 들어왔고, 이내 내 양 무릎은 엄마 무릎이 비좁아 자리를 침범한 양 옆 두 아이의 무게를 반절 짊어지고 있었다. 좌석은 분명 세 개인데 사람이 겹겹이 쌓여 다섯 명이 앉아 있는 기가 막힌 상황. 그렇게 45분 정도를 달리다 초원이 나오고 구세주 같던 바람이 솔솔 불어오자, 노곤했는지 한 아이와 그 부모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이내 아이는 내 무릎에, 엄마는 내 어깨에 엎어졌다. 그 상태로 1시간을 더 달렸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달려 산 호르헤 항구로 갈 수 있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기존 계획은 Ray 어플을 사용해 택시를 잡는 것이었지만, 야속하게도 데이터가 터지지 않았고, 결국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커플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택시를 하나 잡았다. 모래 먼지 자욱한 터미널에 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전혀 없었던 버스 터미널은 웬만한 시장 바닥 저리 가라 할 수준으로 소란스럽고 또 혼란스러웠다.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손짓을 섞어가며 흥정을 시도하던 내게 콜롬비아 커플이 제안을 건네지 않았다면 결국 돈을 아끼겠다며, 걸어가지 않았을까.



택시에 내려 잠시 걸은 수변은 더러웠다. 도착하기 5분 전에 페리가 떠났다 해 별 수 없이 근처 식당에 앉아 생선을 한 접시 시켰다.



서비스로 받은 초콜릿은 게 눈 감추듯 쓴맛이 단맛에 가려져 달았고, 날 것 그대로의 풍요로움이 족해 호텔에서 몇 만 원씩 주고 아버지가 사 오셨던 초콜릿에 비할 수 있었다.


< 좌측 상단의 말라리아 약, 나 말고 복용하는 사람은 전혀 보지를 못했다. >


튀김옷을 대충 발라 조리한 생선은 그 생김새가 조악했지만, 갓 잡아 올려 통에서 펄떡이던 것 중 하나를 골랐기에 신선했다. 나머지는 보이는 것 그대로의 맛이었지만 가격이 고작 5,000원이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오메테페 섬 페리 시간 >


식사를 마치고 30분 정도 수다를 떨다 오메테페 섬으로 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뭍과 섬을 잇는 다리가 없기에 배는 차를 실을 수 있는 카페리였다.



사회주의를 추종했다며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고 소모사가 과거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켰던 나라답게 선박에 떡하니 체 게바라 얼굴을 달아놓은 것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저 멀리 눈에 잡히는 콘셉시온 화산 (Volcan Concepcion). 이때의 나는 상층부의 구름이 뜻하는 바를 알지 못했고, 그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콜롬비아 커플 중 남자분이 우크라이나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즐거웠다며 건넨 맥주 한 캔을 받아마시며 바람을 맞으며 섬으로 건너갔다.


예약해 놓은 숙소는 Rancho, 즉 오두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진 숲 속에 위치해 있었고, 나를 향해 짖어대며 쫓아오는 개들과 신기하다는 듯 아시아인을 구경하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체크인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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