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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Oct 12. 2023

돈값, 투어

마사야 화산

2023. 03. 23, Day 6:


니카라과 그라나다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라면 꼭 한 번쯤은 해볼까 생각했다가도 굳이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투어가 있다.


바로 마사야(Masaya) 화산 투어.


니카라과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국립공원의 중심에 우뚝 선 마사야 화산에 올라 국립공원 관련 박물관을 들르고, 산티아고(Santiago) 분화구를 보는 단순하디 단순한 일정.


그라나다에서 마사야까지의 거리가 왕복 2시간 정도 된다는 점을 고려헀을 때 인당 70~80 달러 선의 투어비는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한들 고작 분화구 하나 보자고 지불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바나나 하나에 10 원하는 물가를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더욱 비싸게 느껴지는 투어.


그럼에도 화산 분화구를 본 게 언제인지, 어릴 적 본 경험이 있긴 했던 건지 기억이 없어, 그리고 호스텔에 있으면 책이나 읽으며 무료히 시간을 때우다가 잠에 들 것이 자명해, 투어를 신청했다.



돌이켜 보건대, 투어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가이드가 설명해 준 지역 축제, 성 제로니모 축제(Fiesta de San Jerónimo)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사야 화산이 자리한 마사야 시의 수호성인인 제로니모 성인을 기리기 위한 축제가 매년 9월 20일부터 30일까지 10일 간 열린다고 하는데, 축제를 보내는 방식부터 마련된 행사 내용까지 모두 특이했다고나 할까.


우선, 축제 기간 동안, 그리고 축제의 실질적 시작일인 8월 15일(시간이 오래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실질적 종료일인 10월 7일에 지역 내 모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간다고 한다. (우린 이런 축제 없나...)


마사야 주교가 행진하는 주교좌성당을 행진하는 것으로 축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방식 자체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으나, 축제 전 날 성인의 동상을 들고 행진한다든지, 모든 사람이 전통 의상을 착용하고 로스 디아블리토스(Los Diablitos)라는 전통 춤을 춘다는 점, 그리고 축제가 끝났음에도 10월과 11월 매주 일요일이면 시민들이 의상을 입고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는 점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불꽃놀이, 카니발뿐만 아니라 로데오도 진행되고, 공예 시장도 열린다 하니 정말 즐길거리가 많아 보였다고 할까.


두 달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축제가 진행된다 하니 얼마나 즐겁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은 와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 영어로 검색했을 때는 관련 정보가 전무했기에, 마사야에 산다는 가이드와 오가는 길에 나눈 축제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새롭고 즐거웠다.


그러나 박물관은 박물관이었다.


니카라과가 화산대에 걸쳐 있다는 점, 그리고 화산 및 토속 신앙과 기독교가 결합한 과정 등을 풀어냈으나 사실 전달에 충실한 설명과는 별개로, 모형, 바닥, 디자인 등이 조악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은 박물관 내부의 박쥐들.


살아있는 박쥐를 두 눈으로 직접 본 게 처음이었거니와 구석에 박혀 있는 모습이 어찌어찌 눈에 들어와서 재빠르게 사진으로 담았다.


전망대로 가는 도중 동굴 비슷한 전시를 지나치게 되는데 그 구역 인근에서 날아다니거나 어둠 진 구석에 박혀 있으니 한 번 찾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박물관을 다 돌아보면 자연스레 전망대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썩 인상적이지는 않다.



조류학 관련 지식이 풍부한 가이드 덕분에 망원경으로 여러 새들을 관찰하고 끝에는 이구아나 역시 한 마리 포착했으나 생태계가 다양해서 매력적이었던 것이지, 막상 눈에 들어온 화산호는 평범했다.


이어 차를 타고 분화구로 이동했다.



첫 10분 간은 연기가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 눈에 들어온 용암. 지표 아래 있으면 마그마고, 지표면에 도달했거나 뚫고 나왔으면 용암이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가이드. (갈라파고스에서 해당 내용을 들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가스 때문에 위에서 직접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은 십분 이해하나 당초 분화구를 내려다보는 각도가 그리 좋지 못하다 보니 많이 실망스러웠다.


능선을 따라 저무는 주홍빛 노을은 분명 아름다웠으나 어디까지나 노을이었고, 고개를 내려다봐야 하는 분화구의 특성상 분화구와 노을을 동시에 눈에 담을 수 없었기에 아쉬움은 배가 됐다.



해가 진 후에는 시뻘건 용암을 제외하고는 시야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이후, El Presidente로 알려져 있으며, 대통령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는 니카라과 출신 야구선수 데니스 마르티네즈(Denis Martinez)와 니카라과의 축구, 그리고 관광업,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로 복귀했다.


보통 투어를 마친 후 그 경험에 대해 평가할 때, 투어의 핵심이 되는 장소를 떠올리며 투어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번의 투어는 그런 의미에서 특이했다.


박물관 관람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으며, 500원 동전보다 조금 커 보이는 분화구는 내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이드와 즐겁게 나눴던 대화들은 내게 그저 중남미에 위치한 화산이 많은 국가의 니카라과가 아닌 생동감 넘치는,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니카라과의 인상을 심어주었으니 돈값을 했다 가타부타 따지기엔 참으로 애매했다고나 할까.



오후 7시 30분경, 근처 식당에서 Light 답게 가벼운 맥주 한 잔과 소고기 바비큐로 저녁을 마무리했다.

 

잘게 채 썬 양배추 위 은색 그릇에 담긴 소스는 싱거우면서도 고춧가루 향은 살아있는 물김치의 맛이었고, 쌀알은 어정쩡한 팥밥 같아 혐오스러웠지만, 고기는 훌륭했고, 바나나는 적당히 달짝지근했으며, 무엇보다도 가격이 8달러였기에 즐겁게 한 끼를 먹어치웠다.


삼시세끼 3일이면, 투어 한 번이라. 마사야 화산 투어는 그렇게 내게 돈값을 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는 기묘한 인상만을 남기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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