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Oct 13. 2023

바나나 공화국, 1개 35원.

미국과 착취

온두라스를 모델로 쓰인 오헨리(O. Henry) 작 단편 소설 '양배추와 임금님'에서 가상의 국가인 '안추리아(Anchuria)'는 바나나 공화국에 비유된다.


바나나 등 단일 품목에 경제가 좌지우지되며, 해당 산업 기반을 국제 자본에 잠식당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를 바나나 공화국(멸칭이다.)으로 일컫는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중앙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의 정치에 개입해 그 지형도를 모기업의 이익에 부합하게 조작하던 다국적 기업(한국인에게 익숙한 델몬토, 돌 등이 포함된다.)들의 작태를 묘사하고자 등장한 용어.



온두라스처럼 중미에 위치해 있으며, 외국 과일 기업들에 역사적으로 착취당했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여전히 불안정한) 니카라과 역시 바나나 공화국의 대표 주자로 꼽히곤 하는데 - 비극적인 역사와 남의 등을 처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비분강개해야 한다는 점과 별개로 - 바나나 공화국의 바나나, 그리고 전반적인 물가는 싸기 그지없다.



2.5L 망고 주스 하나에 3,000원.



그리고 현지인 노동자들을 동원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여전히 이뤄지는 오메테페 섬, 슈퍼마켓에서,



바나나 하나에 35원.


찰기가 부족해 바스러지는 듯한 식감은 확실히 한국과 미국에서 먹던 바나나에 비할 바는 못 되었으나, 감숙왕 바나나가 개당 700원 정도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는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사과에는 떡하니 Made in USA가 붙어 있는 게 모순이라면 모순이랄까.


< 단 것에 환장한다. 참고로 오렌지 주스는 설탕 맛이 강한데다 밍밍해 비추 >


그렇게 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두 손 가득 과일과 요구르트를 사든 채, 신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궁둥이를 들썩이며 숙소로 돌아와 요구르트 세 개를 단숨에 들이켰다.


저렴한 자본주의의 맛은 어정쩡하게 달았고, 이내 내 시선은 아까 사 온 사과로 향했다.


비록 품목은 바나나에서 의류, 철광석, 그리고 커피로 바뀌었다고 하나 여전히 미국은 니카라과의 제1 수출국이고, 제1 수입국이다. 심지어 수입의 규모는 수출의 1.5배. 기축통화국인 미국을 상대로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기구한 국가.


그리고 내가 베어문 그 미국에서 수입한 니카라과의 사과 한 알.


과일 대기업들이 떠나갔음에도 여전히 미국에 종속돼 있고,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독재 아래 부패,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 지수가 모두 세계 150위권에 불과한 국가.


그 니카라과에서 맛본 바나나는 거듭된 착취와 맞바꾼 어설픈 개량의 흔적이 묻어나 퍼석했지만 달았고,


오렌지 향이라곤 맡을 수 없던 오렌지 주스에서는 사탕수수가 아닌 설탕의 흔적이 어정쩡하게나마 묻어났지만,


바다 건너 공수해 온 미국의 사과는, 도통 달지도 않고 퍼석하기만 해,


과연 이 공화국은 누구를 위해 어디로 가는가 한참을 고민하다,


나로선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어, 한 입 베어문 사과를 옆으로 밀어둔 채 멀뚱멀뚱 천장만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이게 맞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