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산호세 표류기
22. 12. 31: Day 16,
동물학자를 꿈꿨던 어린아이가 어느덧 자라나 국토 1/4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코스타리카에 온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터이다.
반면, 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코스타리카에서 정작 위대한 자연을 마주할 기회를 잃게 된 것은 여행이면 으레 있기 마련인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렇다 한들 계획 없이 흘러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수없이 반문하게 한,
100% J로서는 괴롭기 그지없는 하루.
새해를 하루 앞둔, 12월 31일. 그렇게 난 산호세에 좌초됐다.
계획은 이랬다.
코스타리카에서 공부 중인 군대 선임 형을 만나 함께 몬테베르데(Monteverde) 운무림을 방문하고 라 포르투나(La Fortuna) 온천에서 여행의 피로를 녹이는 것.
50개국을 이미 여행해 본 여행 선배답게 형은 콜롬비아를 여행하다 넘어올 예정이었고, 공항에서 합류해, 31일, 연말 파티를 즐긴 후, 익일 목적지로 출발하는 여정을 구상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해외에서의 연말 파티라니, 생각만 해도 설렜고, 한국이 아닌 낯선 타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도 꽤나 매력적이었다.
30일 체크인. 31일 체크아웃. 연말 파티. 몬테베르데 운무림. 라 포르투나 온천. 그리고 귀국.
직감이란 건 왜 하필 이럴 때 맞아떨어지는 걸까.
이유 모를 우울함에 밤잠을 설친 난 일어나 침대를 뒹굴었고, 첫 도착지였던 푸에르토리코에서도, 스페인어라고는 간단한 인사말만 암기한 채 무작정 찾아가 고산병으로 드러누워 있었던 키토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막연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깨어보니 간밤에 누군가 쇠망치로 두뇌를 반으로 쪼갠 것 같은 두통이 몰려왔고, 모기 물린 자리를 얼마나 긁어댔는지 손톱에 딱지가 껴있었다.
완벽했던 계획, 완벽할 하루에 대한 내 기대는 일어나 확인한 카톡 한 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코로나19 증세가 의심되고,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기는 하겠으나, 확진이라면 일정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 (군 시절에도 이상한 곳에서 철저하고 또 허술했던 형이라 이해는 갔으나, 비행기는 왜 탄 걸까...)
다만 어디까지나 총 4명의 인원이 여행할 계획이었기에, 사람 한 명이 빠진다고 해서 일정 자체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나머지 일행 세 명 역시 형과 함께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셋 다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되었고,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이미 코로나19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아니, 지금 돌이켜 보면 믿고 싶었던 게 맞는 것 같다.
지난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길게 온 카톡 메시지를 읽은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였다. 아프다는데 어쩌겠는가.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몸 잘 챙기시고 회복 잘하시라. 아쉽다. 내가 할 말도 사실상 정해져 있었고, 그렇게 나는 답장을 적어 보낸 후, 아파오는 머리를 싸맨 채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한숨막 푹푹 쉬어댔다. 버스 예약까지 마쳤건만...
키트 진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달리 할 것도 없는 상황 속에, 내 음울함이 공기 중에 퍼져 나가기라도 했는지 투숙객 두 명이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던졌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마음에 따라나섰다.
숙소 산호세로부터 약간 떨어진 알라후엘라(Alajuela)
결과적으로, 잠시간의 산책은 내게 여유와 절망을 선사했다.
근처 박물관 앞의 공원에서 선율에 맞춰 조금은 느리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듯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노인들. 흥겹게 발과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유로운, 삶의 황혼을 온전히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
거리마다 들어선 노점상과 작은 점포들.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니는 아이들과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향하는 어머니들의 모습. 녹슨 철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또르띠야와 갓 딴 것인지 아직 푸르른 바나나가 걸려 있는 과일 가게까지.
평화로웠다.
그리고 바로 그 평화가 문제였다.
할 게 너무도 없었다.
호스텔에서 일하는 루이즈 왈, 산호세만큼 할 게 없는 도시도 찾기 힘들 거랬으니...
내 걱정은 타당했고, 어디로든 떠나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어떻게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던 날들이 무색하게, 코로나19라는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은 갑작스럽게 다가와 나를 넘어뜨렸고,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스포츠카에 탄 줄 알았던 난 어느새 등받이에 흐느적거리는 몸을 기댄 채 새하얗게 질려,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의 운전대만을 꽉 잡고 있었다.
결국 내가 택한 건 회피. 가끔.이 아니라 거의 항상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네이버 돌림판을 돌리곤 하는 나였지만, 여행 일정을 돌림판에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연락이 오기 전까지 결정을 보류했다.
혹여 몰라 확인해 본 돌림판 결과는 산호세에 머무는 것. 세 번 돌려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왔고, 이는 내가 원치 않는 결말을 강하게 암시했다.
코로나는 코로나고 뭐가 됐든 즐길 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새해를 맞아 산호세의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을 구경했고, 주인 할머니께서 주신 초 비슷한 무엇으로 새해를 축하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 확인한 카톡들.
아니나 다를까, 선임 형은 확진.
같이 가기로 한 분도 취소 (부담스러웠던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1월 1일. 그렇게 난 산호세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