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아침
22. 12. 28: Day 13,
시작부터 불안했다.
일전 방문한 투어 회사에서는 출발 시간과 관련해 말을 두 번이나 바꿨고, 내 생각에도 손에 놓인 예약 확인증 한 장으로 모든 게 원만하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예약한 투어는 시에라 네그라(Sierra Negra) 투어. 직역하면 검은 산 투어로, 갈라파고스 제도의 최대 활화산을 오르는 단순한 투어.
칼데라의 지름이 10km에 육박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반면 높이는 낮아 트레킹에 적합한 화산으로, 다시 방문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투어를 결정했다.
(어차피 오전에 호스텔에 있으면 늦잠이나 자다가 미적거릴 게 뻔하므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도 일어나니 하늘은 맑았다. 대충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친 후,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가 10분 만에 조식을 해치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호스텔 정문에 서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7시 15분.
어디서나 투어 회사는 10분 전 도착을 요구하기에 투어 시작 시간인 7시 30분의 10분 전인 7시 20분까지는 5분이 남은 상황.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를 10분. 그리고 오지 않는 투어 차량.
이후로는 패닉의 연속이었다. 우선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10분 거리에 있는 투어 회사에 다녀왔다. 편도 10분 거리를 10분 만에 왔다 갔다 하니 입에서 단내가 났다. 단내고 뭐고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았으련만...
오전 7시 30분 찾아간 투어 회사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오니 7시 35분.
혹여나 내가 투어 회사를 찾은 사이에 셔틀이 왔을까 싶어, 호스텔 주인아주머니와 호스텔 앞 편의점 직원에게 트럭을 봤는지 물어봤지만, 대답은 노.
그렇게 투어 당일 날 아침에 난 버려졌다.
망연자실한 채 혹여나 내가 시간을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고 7시 55분이 되기까지 호스텔 앞을 서성였다.
그럼에도 픽업트럭은 오지 않았고, 모든 걸 포기하려던 찰나, 길 모퉁이를 돌아서 빨간 쉐보레 픽업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아저씨 한 명이 트럭에서 내리더니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대뜸 꺼내는 한 마디.
"Any problems?" (무슨 문제라도 있어?)
당연히 있었다. 아니 많았다.
"Yes. The truck that was supposed to pick me up didn't show up and I couldn't contact the tourist company." (옙. 오기로 했던 트럭은 오지 않고, 투어 회사에는 연락이 닿지를 않네요.)
시골 비스무리한 마을에서 갑자기 내 앞에 멈춰 선 아저씨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Okay." 한 마디를 뱉고, 어디론가 쿨하게 전화를 걸던 그 모습이었다.
걸고 끊기를 두 번.
"There were some problems with the pick-up location. I called the company and another shuttle would come pick you up." (픽업 장소와 관련해 문제가 있었고, 회사에 전화 걸어놨으니 다른 셔틀이 와서 너 데려간다네.)
그렇게 연신 그라시아스를 외치는 나를 뒤로 하고, 홀연히 나타난 아저씨는 호방하게 웃으며 내게 손짓을 건네고 바람처럼 떠나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트럭이 도착해 나를 태워갔다.
가는 길에 우연찮게 한국인 가족과 트럭에 같이 탑승하게 됐는데, 가기 싫다는 동생 녀석과 한 번 맞아볼 테냐 하며 협박하는 형, 그리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예전의 우리 가족을 보는 듯 해 웃음이 났다.
여러 호스텔을 두루 들르며 여행객들을 픽업한 후 트럭은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려, 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담긴 표지판 앞에 멈춰 섰다.
그렇게 아침부터 버려졌던 난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진 한 아저씨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산의 초입에 도착해 투어에 합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