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게.
22. 12. 27: Day 12,
오전 틴토레라스 투어를 마치고 드문드문 눈에 띄는 홍학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질리기 시작한 난 다른 할 일이 없나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관광지보다는 시골 마을에 가까운 이사벨라 섬에는 무료로 할 만한 것들이 많지 않았고, 결국 30분 거리의 선착장 근처 해변으로 걸어가 스노클링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스노클링 포인트까지 나무판자로 길이 이어져 있었고 중간에 바다사자 한 마리가 평화로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길은 계단을 통해 바다로 바로 이어져 있었고, 짐을 나무기둥에 걸어둔 채 물로 뛰어들었다.
자그마한 새우들이 떠다니고, 가끔 암초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바다이구아나와 펠리컨이 포착됐지만, 물 자체가 탁해 스노클링 포인트로서의 매력은 떨여졌다.
우두머리 바다사자와의 수영은 즐거웠으나 한낱 필부가 쫓아가기엔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우측 암초 근처에서 작은 물고기 여러 마리들이 여유로이 유영하고 있었다.
스노클링을 마친 후 정처 없이, 해가 질 때까지 해변을 걸었다.
중간에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의 부탁으로 사진을 한 장 찍은 것 제외하고는 무난하디 무난한 시간들.
이내 달이 해를 아래로 밀어냈고
이윽고
이사벨라 섬에 밤이 내렸다.
멍하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저녁에 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역만리 부산에서 걸려온 전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무엇에 그리 즐겁게 웃어댔는지, 자잘한 내용들은 시간에 묻혀 다 잊어버렸지만, 전화 통화 내내 반복해, 힘주어 말했던 문장 하나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젊게 살자."
세월에 휩쓸려, 익숙해지고, 무뎌지며, 이내 시류에 편승해 그저 그런 평범한 인생을 살지 말자는 것.
천라만상에 감탄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우뚝 솟은 나무로부터 하늘하늘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동심을 잃지 말자는 것.
육체적으로는 늙고 병들어 가겠지만, 눈 감는 순간까지 늘 별을 꿈꾸자는 얘기를 했었다.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자는, 살아가자는 의지를 다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러한 얘기를 나눴는지는 잘 모르겠다. 술을 한 잔 걸쳤던 것,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난 노을에 취했었고, 친구 녀석은 왜인지 모를 변화의 계기를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이사벨라 섬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