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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Feb 09. 2023

좌충우돌. 스페인어로 미사 보기

미리 맞는 크리스마스

22.12.19: Day 4,


 6시가 가까워 오자 몸을 일으켜 다시금 성당으로 향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로 성당까지 올라왔어도 물어봐야 할 것은 확실히 물어봤기에 미사 시간은 6시가 분명했다.


고개를 타고 올라, 성당에 들어가려 하자 안내요원이 막아섰고, 어설픈 스페인어로 미사 시간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요원이 손가락으로 7을 그려 보였다.


< 결과적으로 같은 성당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 번 더 올 수 있어 기쁘다고 생각해야지, 왜 시간이 다르냐고 따져봤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 파스타를 한 그릇 비웠다. 해산물이 싱싱하기는 했지만 염도 조절에 실패해 그럭저럭 먹을만한 파스타였다.


나중에 미사를 드린 후, 저녁 9시 이후로 문을 열어젖힌 상점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차라리 일찍 식사를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불행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행운으로 둔갑해 있다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보다 조금 더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정확히 그러한 경우였다.  




다시금 언덕을 올라 성당에 도착했고,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께 7시에 미사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 맞는지 여쭈어 보고 자리에 앉았다.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과 학부모로 보이는 부부들이 성당 앞줄을 채우고 있었고, 제대 앞에 보면대도 여럿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특별공연이 준비되어 있는 듯했다.


미사는 7시 3분 정도에 시작했는데, 단 한 번도 늦게 시작한 적이 없었던 한국과는 달라 당황스러웠다. 전반적으로 많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미사가 진행되었다. 뜻만 통하면 된다는 듯이 신자들의 기본적인 손 모양부터 크게는 자세까지가 조금씩 달랐다.


바로 앞자리에 앉아계셨던 수녀님 다섯 분이 혼란을 더했는데, 여타 신자들이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칠 때 수녀님들은 가만히 계셨고, 기도하시는 모습도 가지각색이섰다. 특히, 영성체 예식에 접어들어 두 분은 무릎을 꿇으시고 한 분은 서 계시고, 나머지 두 분은 앉아계셨을 때는 도무지 어떠한 자세로 미사에 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다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순서 자체는 대동소이했기에 적절히 아멘을 외치며, 미사를 무사히 마쳤다.


느긋한 민족성을 반영하는 것인지 혹은 그날만 준비에 시간이 더 걸렸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미사에서 사용하는 곡들 역시 보다 빠른 박자를 타며, 흥겹고 중간중간 박수를 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색달랐다.


< 성탁 축하 공연 >


미사가 끝난 후 예상대로 성탄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캐럴 메들리에 이어 White Christmas까지 합창으로 들으니 성탄 분위기가 제대로 났다. 이후에는 미사 전반의 노래를 담당하던 분이 나와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기 시작했는데 그 또한 즐거웠다.      


으슥한 밤길을 최대한 빠르게 주파하며 숙소로 돌아와 갈라파고스 입도 준비를 했다. 이미지를 클릭해야 링크로 연결되는 괴상한 양식을 채택한 에콰도르 정부 홈페이지로 들어가 TCT 폼을 채웠다. 작성 완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링크 하나 주지 않는 졸속한 웹사이트였다.      


< 야경이 오로지 가로등불임을 알게 되면 잠시 섬짓하게 된다. 침대를 한참이고 점령했던 냥아치 녀석 >


잠시 옥상에 올라가 야경을 즐겼고 잠을 청했다. (옥상에서 개똥을 밟은 것을 제외하고는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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