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행이다.
때로는 내가 자그마한 길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오늘 내가 본 그것들을 놓쳤을 테니깐.
자그마한 길치는 어쨌든 내가 가야 할 지점에 이른다.
자그마하게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는 일은 잦지만.
하지만 큰 길치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큰 길치는 너무나 크게 길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할 수도 있으니깐.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지도가 알려주는 길을 벗어났기에
오늘 저녁 어스름에 구름을 맞이하는 외딴 성 같은 모습을 한 서울을 만날 수가 있었다.
가로등이라고 해서 꼭 어둠 속을 밝혀야만 하는 것일까.
어스름을 가득 품은 가로등은 또 그 자체로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뿜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잘못 들어선 길에 마주한 어스름을 내뿜는 가로등도 일순간 황홀하다.
그래도 가로등은 역시나 가로등.
어둠 속에 빛을 밝혀주기에 가로등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일 테다.
그래도 길을 잘못 들어선 바람에 어스름을 내뿜는 가로등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구름을 맞이하는 외딴 성 같은 서울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다다른다.
가로등은 역시나 빛을 밝혀야 가로등인 것처럼.
조금 헤매지만 어쨌든 목적지엔 도착하는 자그마한 길치인 나라서.
자그마한 길치인 나는,
또 꽤 자주 길을 잘못 들어서
수많은 무언가들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이다.
빙 돌아가긴 해도 결국에는 내 갈 길을 찾아가는 자그마한 길치라서
그 와중에도 무언가들의 다른 모습들의 자그마한 황홀감에 빠질 줄 아는 길치라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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