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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ul 08. 2016

#07. 자그마한 길치라서.

참, 다행이다.

구름을 맞이하는 외딴 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서울


때로는 내가 자그마한 길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오늘 내가 본 그것들을 놓쳤을 테니깐.


자그마한 길치는 어쨌든 내가 가야 할 지점에 이른다.

자그마하게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는 일은 잦지만.

하지만 큰 길치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큰 길치는 너무나 크게 길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할 수도 있으니깐.


뭐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지도가 알려주는 길을 벗어났기에

오늘 저녁 어스름에 구름을 맞이하는 외딴 성 같은 모습을 한 서울을 만날 수가 있었다.


포도밭 그 사나이, 아니 구름밭 그 포도.



가로등이라고 해서 꼭 어둠 속을 밝혀야만 하는 것일까.

어스름을 가득 품은 가로등은 또 그 자체로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뿜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잘못 들어선 길에 마주한 어스름을 내뿜는 가로등도 일순간 황홀하다.


그래도 가로등은 역시나 가로등.

어둠 속에 빛을 밝혀주기에 가로등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일 테다.


그래도 길을 잘못 들어선 바람에 어스름을 내뿜는 가로등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구름을 맞이하는 외딴 성 같은 서울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다다른다.

가로등은 역시나 빛을 밝혀야 가로등인 것처럼.

조금 헤매지만 어쨌든 목적지엔 도착하는 자그마한 길치인 나라서.


자그마한 길치인 나는,

또 꽤 자주 길을 잘못 들어서

수많은 무언가들의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이다.


빙 돌아가긴 해도 결국에는 내 갈 길을 찾아가는 자그마한 길치라서

그 와중에도 무언가들의 다른 모습들의 자그마한 황홀감에 빠질 줄 아는 길치라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나만의 청춘로드 '빛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기록을 남기며.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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