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이름, 바람, 바람, 바람. [상암 하늘공원]
5월이다.
봄의 따스함과 여름의 뜨거움 사이에서 바람은 방황하듯 흘렀다.
긴 휴가를 나왔다. 여름이라기엔 조금은 이르고 봄이라기엔 다소 늦은 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내가 입은 옷은 길었던 검정 동정복에서 짧은 하얀 하정복으로 바뀌었다. 5월, 봄의 따스함과 여름의 뜨거움 사이에서 바람은 방황하듯 흐르고 있었다.
휴가 나온 군인이었고, 친구들과 약속도 꼬박꼬박 다녔다. 그렇다고 해도 정해져 있는 약속들 사이에서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놓여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꼭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처럼 정처없이 떠도는 처지가 되었다. 문득, 바람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싶었다. 정처없이 떠돌고, 방황하듯 흐르고 있는 처지가 비슷해서 였을까.
어쨌든 바람은 하늘이랑 가장 가까운 느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포의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낮 동안 하늘에서 누군가에겐 따스하게, 누군가에게는 뜨겁게 감싸고 있던 태양은 조금씩 모습을 감추는 중이었다. 태양은 모습을 감추면서도 공원 입구에 들어서고 있던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 애틋한 시선 때문이었는지 혼자 걷고 있었지만 조금은 덜 외로웠다.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 지 못했다.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이었으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걸지도.
계단 틈으로 들꽃이 보였다. 하늘과 조금씩 맞닿는 거리로 들꽃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지려 계단을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외국인 관광객들, 커플들, 그리고 그 속의 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길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섰다. 얼마 전에 읽은 <와일드> 속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와일드>의 저자이자 책 속의 주인공 셰릴은 PCT라는 미국의 국립공원을 100일동안 도보로 여행한다. 그 거리는 약 4300km. 그 거리에서 셰릴은 대부분 혼자 걷는다. 그 속에서 셰릴은 온갖 종류의 고독을 느낀다.
그 광활한 공간 속에서 그녀 혼자.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나 혼자.
<와일드>하진 않았지만 잠깐 그 느낌을 느끼려해본다. 그리고 점프하면서 사진을 찍으려 해본다. 그거 참 유치하지만. 하지만 점프하는 사진을 하나 제대로 건지진 못했다. 아쉽게도.
하늘과 가까운 그 공간에서 점점 더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하나, 둘 사람들도 자리를 뜬다. 사람이 빈 자리에 방황하는 바람이 채운다. 바람은 언제나 비어있는 곳을 찾는다. 허전한 곳에는 바람이 찾아든다. 정처없이 방황하는 바람은, 어쩌면 그런 빈 곳을 찾기 위해 그러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하늘공원의 야경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울의 야경명소로 꼽힌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 눈에 보이는 바람소리, 차소리, 물소리가 한데 어우려진다. 어둠이라는 도화지에 각각의 소리들이 물감칠을 한다. 아래에서는 크게만 보이던 것들이 작게, 희미하게 보인다.
마음 속에 크게만 자리하고 있던 온갖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진다. 하늘 아래에선 그 어느 것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늘로 오르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만, 하늘로 치솟으려고 하는 그 생각이 욕심이 되어버려서 그게 참 우습지만.
야경을 바라보고 내려왔다. 바람이 떠도는 것은 어쩌면 허전한 곳을 채우기 위해 떠도는 것임을 생각했다. 바람은 언제나 외로운 것을 찾는다. 그 대신에 바람이 외로운 것은 아이러니. 나는 그 바람이 되어 떠돈다. 내가 외로운 것은 내가 바람이기 때문. 그 외로움 속에서 다른 이의 외로움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뭐,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공원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돌아간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바람이 있었다. 그들에겐 어떤 허전함이 있다는 걸까.
그런 순진한 호기심으로 나는 또 바람이 되어 분다.
그대 이름
바람, 바람, 바람.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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