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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Oct 25. 2015

'모든 요일의 기록'을 기록.

일당백 독서록 #02.『모든 요일의 기록』(김민철)

0. 들어가며.

    매 학기 새롭게 받는 교과서마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교과서 속 남자는 여자가 되고, 젊은 청년은 할아버지가 된다. 펼쳐 드는 교과서의 이름마저도 책 주인 마음대로다. 저마다의 손에 쥐어진 각자의 책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갖는 각자의 책이 되었지만, 내 책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게, 너무 싫었다.

    내 책은 깔끔해야만 했다. 책이 더럽혀질까, 행여나 찢어질까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야만 했다. 책에 낙서란?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날려서 쓰는 글씨를 즐겨 쓰는 나였지만 책에서만은 예외였다. 책 위에선 글씨마저 정갈해야 했다. 그러던 나였다. 그런데, 그러던 내가 이제는 책에 아무렇게나 줄을 긋고, 아무 곳에나 필기를 한다. 책장을 넘기면 이곳저곳이 마구 접혀있다. 책의 작은 흠집도 싫어하던 내가, 이제는 무자비하게 책에 흉터를 남긴다. 그리고 그녀, ‘김민철’ 역시 그러하다고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이야기한다. 게다가 그녀는 ‘카피라이터’이다.


1. 동경의 ‘카피라이터’

    언제나 나는 ‘카피라이터’에 대해 동경을 가지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3년 내내 나의 장래희망은 ‘카피라이터’였다. 우연히 알게 된 ‘광고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광고인’에 대해 알아본 바, ‘카피라이터’가 내가 가장 다가서기 쉬운 직업이라 생각했었다. 글 쓰는 일은 딱히 다른 능력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중학생인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면서 점점 글 쓰는 일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더욱이 광고에 쓰이는 ‘카피(Copy)’를 ‘잘’ 쓰는 일은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이는 군대에 오기 직전 들었던 광고수업에서 더욱 여실히 깨달았는데, 이 광고 수업의 교수님은 카피라이터 출신이셨다. 교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광고를 만드는 조모임도 어려웠다. 광고 카피를 하나 써보기도 전에 이미 수업은 마쳐있었고, 어느 순간 나는 광고에 대해 뭐 하나 깨닫기 전에 군대에 와 있었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글로  먹고사는, 글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히 노력하는 글쟁이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중 10년 차 카피라이터 ‘김민철’, 그녀가 이 책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더 이상 책을 가만 두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책을 괴롭힌다고.


2. 짧은 기억력이 가져다 준 축복.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도무지 그 책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저 ‘아, 그 책은 그냥 이런 느낌이었어.’ 정도의 감상만이 남는다. 책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선 다시 책장을 펼쳐야만 했다. 그런데 내가 찾으려는 정보는 어디에 있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메모를 시작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내가 나중에 다시 떠올리고 싶을 거야. 찾게 되겠지.’ 그녀 역시 같은 이유로 메모를 한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좁고 좁은 그녀가’ 카피라이터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메모를 보곤 다시 책을 읽는다. 그때의 본인이 어떤 생각으로 그 메모를 남겼는지 알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부분에 새로운 감정으로 줄을 긋는다. 그렇게 영원히 새로운 책을 발견해나간다. 그녀가 말하는 그녀의 짧은 기억력이 가져다 준 축복이다. 나의 메모 역시 그런 축복의 열쇠이길, 나의 짧은 기억력도 그런 축복이길.


3. 일상 ‘기록.’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쓴다. 『모든 요일의 기록』에 남긴 그녀의 인생법이다.


“나에게 인생을 잘 살 수밖에 없는 기본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기본기를 키우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고, 뭔가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렇게 비옥하게 가꿔진 토양이 있어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카피도 쓰고,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기껏해야 많은 것들 가운데 몇 개만 쓸 수 있을 세상에서, 그녀는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때로는 쓰면서 끊임없이 몸에 ‘기록’한다. 모든 것을 종이에 쓰지 못하기에 더욱 강렬하게 몸에 ‘기록’한다. 그리고 이 몸의 기록은 의도하지 않아도 종이에 나타난다. 이 책은 그녀의 그런 기록의 일부이다. 한 줄의 문장을 짓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개의 감각과 기억을 사용하는, 쓰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쓰는 카피라이터의 일상 기록.

    그 기록을 무던히 받아들이며 그녀의 일상을 몰래 나의 노트에 옮긴다. 그러면 어느새 그녀의 일상이 나의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나의 일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학창시절 교과서마다 책에 새로움을 더하던 친구들은 이미 나보다 앞서 자기들만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시간 동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선, 자기만의 일상을 끊임없이 책에 더하며 행복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도 내 책들에 나만의 색을 더하며 일상을 ‘기록’해야겠다. 그 기록 속에서 나도, 나의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의 행복감에 빠져들어야겠다. 나의 일상은, 지금, 이곳에. 그리고 앞으로 쭈욱. 일상에 일상을 더하며 지금도 나는 천천히 또 기록을 남겨본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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