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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Dec 16. 2016

다 이제부터다.

그러면서도 나는 먹을거리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다 이제

부터다.


점심으로 먹은 밥 보다 비싼 간식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처음으로 통장 잔고를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밥값보다 비싼 간식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

.

.


항상 생활비를 두둑히 보내주시던 부모님은 이번에 처음으로 내게 내년 초까지 생활비가 모자를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한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는데, 그러셨다.


군대 가기 전에 넣어두었던 등록금으로 이번 학기 등록금을 충당했다. 그 등록금만큼 받은 장학금 일부를 부산집으로 보냈다. 하루에 이체 가능한 모바일뱅킹 최대치가 100만원이었으므로 100만원을 이체하고 전화를 드리자 나머지 금액으로 동생이 작업하는데 필요하다고 한 노트북을 사주라고 이르셨다. 동생에게 100만원이 넘는 노트북을 사줬다. 나머지를 생활비로 쓰기로 했다.


따로 돈을 벌지 않았다. 항상 돈을 쓰는 쪽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 만나는 곳에 빠지지 않았다. 거기엔 항상 돈이 들었다. 어쨌든 돈이 있었으므로 돈을 썼다.

참여했던 프로그램의 수기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금이 100만원이었다. 대상을 받았다는 것보다 상금 100만원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에 먼저 관심이 갔다. 시상식은 끝나야 받겠지. 재단 후원의 밤과 함께 계획되어 있던 시상식이 불안정한 시국 탓에 연기되었다. 상금이 연기되었다. 안타까웠다.


수업 중 기업과 연계한 공모전에 참여하였다. 대상 상금이 300만원이었다. 300만원에 먼저 눈이 갔다. 300을 목표로 한 학기동안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20만원 장려상을 받았다. 팀원과 나누니 3만원이 돌아왔다. 300이 아닌 3이었다. 아쉬웠다.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썼다. 따로 정해진 돈을 정해진 기간마다 받아 쓰는게 아니라 생활비를 다 쓰면 그때그때 연락해서 생활비를 받아 써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연락 할 수 없었다.


군대에서 시작한 만기가 덜 된 적금이 있었다. 적금을 깨긴 싫었다. 대신 군대에서 언젠가부터 여행비자금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2500원씩 모은게 떠올랐다. 이틀이면 5000원 담뱃 한갑 가격. 군대 안에서 선후임들이 담배를 피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돈을 모아봐야겠다고, 모은 돈으로 여행이나 다녀야겠다고해서 여행비자금, 담뱃값으로 여행가기.라며 꾸역꾸역 한달 20만원 내외의 월급에서 하루 2500원씩.


여행비자금에서도 절반을 꺼내 썼다. 물론 전화 한통이면, 어쩌면 이번 시험을 마치고 잠깐 부산 내려가면 다시 생활비를 받게 될 터다. 그래서 다시 돈이 생길 것이고, 돈이 있으니 이전처럼 돈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글을 남기는건, 수중에 돈이 없어본 적이 없는 내가, 사실 지금도 돈이 없지는 않지만, 체감상 이렇게 숫자에 조금이나마 민감해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런 와중에도 매일 먹을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먹성 좋은 철부지 23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난 기간 중 매일 2500원씩 모아뒀던 나의 여행비자금 덕분에, 잔고를 걱정하면서도 매일 먹을거리를 사먹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마침 어제 하굣길에 사먹은 다이제는 군대에서 매일 모았던 금액과 같은 2500원이었다는 우연의 일치에 놀라하며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달달하고 칼로리 듬뿍인 다이제마냥


다 이제

부터 하는거다.


돈도, 생활도, 공부도, 뭐든지.


그래서 지금은 내일 시험치는 과목 공부를 처음으로 시작해볼까 한다는 점이다. 아니, 잠시 뒤 몇시간 뒤에 치는 시험 과목 공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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