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라이세이 Jan 22. 2018

그럴 '틈'이 있나요

오랜만에 긴 글을 썼다. 주제를 보고도 뭘 써야할 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예전에 썼던 글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다 쓰고나서도 잘 모르겠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죽기 전까지 반드시 실현하고픈 소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꿈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려는지"
에 대하여 진실하고도 자세히 답하시오.


‘틈’을 노리는 삶


    2016년 가을학기, 대학에서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교수님께 듣고, 학생들끼리 토론하는 수업을 수강했다. 그중 한 주제는 ‘장자’였다. 기억에 남는 장자 철학의 핵심은 ‘이야기하는 삶’이었다. 개개인의 개성과 다름을 하나로 특정하여 참과 거짓 혹은 옳음과 그릇을 구별하는 ‘논증하는 삶’과 대비되는 ‘이야기하는 삶’의 ‘이야기’는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특정한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인간이란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저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 속에서 상대적 차이에 따라 현상을, 이야기를 바라볼 뿐이다. 여기서 ‘틈’이 생긴다.

    ‘이야기하는 삶’의 ‘틈’은 이야기를 읽고,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각자만의 방식의 의미를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유’ 속에서 ‘틈’은 존재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서 ‘틈’은 그저 ‘틈’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주체로서의 ‘나’이기보다는 여러 주체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틈’을 노리며 그 틈을 빠져나오기 바빴다. ‘좋아 보이는 것’과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쫓았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 덕분에 ‘좋아 보이는 성적’을 받고, ‘좋아 보이는 대학’에 진학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이야기’를 통한 ‘틈’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는 삶’에서 생기는 ‘틈’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틈을 노려온 삶’또한 의미 있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틈을 노리며 했던 행동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일례로 고등학생 때의 나는 ‘좋아 보이는 것’을 쫓아 한 제도를 교장 선생님께 건의했었는데, ‘수업종’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던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 전에 한 번 더 종을 울려 그 사이 시간을 복습하는 시간으로 가지는 제도였다. 당시 1학년이었던 본인은 왜 이를 우리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해당 학교의 사례와 이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를 요약한 한 장의 제안서를 들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1학년 학생의 예고 없는 교장실 방문은 드문 일이어서 교장 선생님은 놀라워 하시면서도 반겨주셨다. 그리고 제안서의 내용을 기꺼이 들어주셨다. 이후 해당 방식은 ‘금파벨1)’ 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 

    또 내가 노렸던 ‘틈’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교과목의 성적을 높게 받아야 했다. 이때 가장 발목을 잡은 과목은 수학이었다.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지만 여기서 내가 노린 ‘틈’은 수학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3권의 개념서를 한 권의 노트에 정리하여 나만의 개념서를 만들었다. 수학 문제를 풀고는 틀린 문제는 다시 풀어보는 오답 노트를 만들어 빈 교실의 칠판에서 강의하듯 반복하였다. 이를 통해서 수학 성적도 올리고, EBS의 ‘공부의 왕도2)’라는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출연할 수 있었다. ‘틈이 선사하는’ 난관 속에서 새로운 틈새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1) 5분 정리 학습 '금파벨' 효과 있었네 - 낙동고 학생 제안으로 도입 (국제신문, 2011-04-04, 허보경)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_print.asp?code=0800&key=20110405.22021204447 
2) EBS 공부의 왕도 150회 <농촌 소년, 희망을 쏘아 올리다.> (EBS, 2012-08-15 방송) http://about.ebs.co.kr/kor/pr/release?boardTypeId=1&boardId=31&cmd=view&pageNo=1&no=1&postId=10000105608 
‘틈’을 만드는 사람

     

    이렇듯 지금까지의 삶이 남들이 만들어 온 ‘틈’을 노리는 삶이었다면, 앞으로는 내가 직접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틈’을 만드는 사람이란, 나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행동과 나의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여러 행동을 하고, 여러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 나는 틈틈이 생각하고, 틈틈이 기록한다.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틈’을 찾는 행동의 반복이지만, 남들 틈에서 많은 행동을 하려 한다. 특히 신문방송학을 전공 중인 학생으로서,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러 커뮤니케이터 모임에 참여 중이다. 말을 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물건을 파는 사람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 등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틈에서 나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적는다. 꾸준히, 틈틈이 글을 써서 SNS에 올린 덕분인지 군 복무 시절에 우연히 닿은 출판사 대표님의 제안으로 현재 에세이집 출판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경험의 폭이 한정된 탓인지, 틈틈이 생각하고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내는 것조차 부족함을 느낀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전문서적도, 업무나 생활에 꼭 도움이 되어야하는 실용서도 아닌 난의 생각을 담는 수필집일 뿐임에도 책을 구성하고, 기획하고, 써내는 일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공부가 필요함을 생각한다.

    그 공부는 고전에 대한 공부일 수도, 현실에 대한 공부일 수도, 혹은 미래에 대한 공부일 수도 있다. 이 공부를 통해서 글을 쓰고, 또 이런 글과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틈’을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동기부여’ 하는 삶을 살고 싶다.


‘틈’에 있는 사람 


    하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틈’의 어딘가에는 내가 언급되는 미래를 그려본다.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의 시작에 나의 글이, 나의 말이, 나의 생각이 녹아 있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 많은 사람과, 그 많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나는 어느 회사의 직장인으로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도 글을 써서 책을 내고, 그 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다시 기록하며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틈’을 늘려 나가려 한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익히고, 오래된 것은 잊기를 반복하려 한다. 그리고 그 훈련을 건명원에서 해보고자 이번 4기 모집에 지원한다. 외워야 할 것이 많고, 버려야 할 것이 많을 것으로 안다. 그래서 더욱 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틈’이 선사하는 ‘자유’를 만들기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좀 더 나다운 방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on, of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