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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Feb 23. 2018

여기 빈 자리에 같이 앉으셔도 됩니다

라고 써붙여야 할까.

<취향의 발견>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님들의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던 2층은 전시공간에서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방문한 시간마다 취향관의 2층 방에 손님이 없었다. 아직 쌀쌀한 탓에 2층보다 따뜻한 1층에 자리를 잡는건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작품의 여운이 감도는 것인지 매번 그랬다.


그래도 오늘은 2층 중 한 방에 손님이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평소의 2층보다 따뜻했다. 나는 나머지 방 중 201호에 가방을 놓았다.

열린 문을 통해 2층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남은 자리는 많았지만 그저 문 앞에서 힐끗힐끗.


문 안 쪽에 자리한 전시품이 된 것 같았다.


여기 빈 자리에 같이 앉으셔도 됩니다

라고 써붙여야 할까.


학교에서 시험기간에 빈 강의실을 찾아 공부를 하곤 했다. 예약하지 않은 빈 강의실 한 켠에서 책을 펴고 있으면 강의실 문의 작은 창으로 사람이 있는지 힐끗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빈 자리는 많아도 누군가 있다면 이미 모든 빈 자리도 그 사람의 자리인 듯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간혹 문을 열고 들어와 빈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내가 빌리지 않은 곳, 그렇다고 그 사람이 빌리지도 않은 곳이었으니 우리는 별 말 하지 않고 같이 공부를 하다, 각자 알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직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기엔 우리는 너무 낯설었다. 방 하나에 테이블 하나, 테이블을 공유하기 낯선 우리에겐 테이블 하나가 놓인 방 하나도 같이하기엔 낯설었다.


그렇게 201호를 점거했다. 취향관에 흐르는 음악소리와 창 밖에 강하게 부는 바람소리, 문 밖으로 사람들이 거닐며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나머지 빈 자리를 채우고 있었을 뿐이랄까.


다음에는 여기 빈 자리에 같이 앉으셔도 됩니다, 라고 해야할까 보다.


180223 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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