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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Feb 24. 2018

당신의 지난 시간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책 속의 주인공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2월 10일의 아티스트 토크, 차오르는 밤


지난 2월 10일 <취향의 발견> 전시의 마지막 날부터

취향관 2층을 오르는 계단 옆 벽엔 여러 질문이 걸렸다.



벽의 질문지는 자유롭게 가져가서 자신의 질문으로 삼거나, 답변을 남기거나,

비어 있는 질문지에는 새로운 질문을 남길 수 있었다.


2주가 지난 지금,

어떤 질문지는 사라지고, 어떤 질문지는 누군가의 새로운 질문이나 답변이 달린 채 남았다.



당신의 지난 시간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에게서, 나에게로'라고 답변이 적힌 질문지.

 

지난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 질문에 대해 아티스트 토크 때도 여러 생각이 오갔었다.


'시간이 흐른다.'라는 말처럼 흘러 지나가 버리는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과

시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살아간다는 생각.


따지자면 나는 후자와 같은 생각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난 시간이란 '책장에 이러저러하게 꽂힌 책'처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책장에 이러저러하게 꽂힌 책처럼


한동안 같은 길이와 두께로 이어져 꽂혀 있다가도, 좀 더 크거나, 좀 더 작은 크기로 연달아 꽂히는 책.

표지색이 같을 수도 있고, 어지럽게 다른 색이 섞여있을 수도 있고,

똑바로 꽂혀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눕혀있거나 거꾸로 꽂혀있을 수도 있는 책.


그런 식으로 시간도 책처럼 엮여서 책장에 꽂혀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번 쓰여져 인쇄된 책은 그 상태로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시간도 한번 지나가버리면 그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꼭 인쇄된 책 같았기 때문이다.


1994년 8월 19일에 쓰여져 인쇄된 책은 그 순간에 그 책이 쓰여졌다는 것이 변함없는 것처럼

1994년 8월 19일이라는 시간에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그 시간부터 내 책장에는 수많은, 각기 다른 모양과 색과 두께의 책이 꽂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은 '책장에 이러저러하게 꽂힌 책'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그 자리에 있고, 우리는 계속 새 책장에 새 책들을 꽂는다.


그리고 가끔은 책장에서 먼지 쌓인 책을 꺼내 읽는다.

지난 시간 중 언젠가의 이야기.



책 속의 주인공들은 늙지 않는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영원히 그 시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1년, 5년, 10년....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어느 책이든, 그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몇 년이 지나도 늙지 않는다. 더 이상 키가 자라지도 않고, 주름이 생기지도 않는다. 반면에 나는 조금씩 늙어간다. 어릴 적보다 훌쩍 자랐고, 먹은 끼니의 수는 훨씬 많아졌다. 그래도 책장 속에 꽂혀있던 책의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늙지 않는다. 그대로,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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