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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Feb 28. 2018

비 오는 날이 좋아, 의 취향



가랑비, 소나기, 여우비, 그 밖에도 발비(= 빗줄기가 발처럼 보이는 비), 목비(= 모내기 할 무렵 내리는 비)... 내리는 비는 다 같은 비인가 싶으면서도,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비를 보자니 내리는 비라고 무작정 다 같은 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 이름은 그 비가 언제, 어디서, 얼마 만큼의 강수량을 가지고 내리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처음부터 그렇게 내리려고 작정하고 내려서 그 이름이 붙여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어쩌다 내리다 보니 그 순간에, 그곳에, 그만큼의 비를 내려서 그 이름이 붙여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 오는 날이 좋아.


'비 오는 날이 좋아.'라는 말도 비처럼 생긴 말일 것이다. 비는 내린다. 언제나처럼 어느 날에 비가 내린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저 비가 내릴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서, 어느 만큼 의 비를 보고 있다가 문득 '비 오는 날이 좋아.'라고 말하게 된다. '비 오는 날이 싫어.'가 될 수도 있고.



비 오는 날이 좋아,라고만 말한다면 비 오는 날의 스산함이 좋다는 말인지,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는 말인지,  비 맞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단지 비나, 비와 관련된 그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비 오는 날이 좋아.'에도 여러 종류의 '비 오는 날이 좋아.'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이 좋아.'의 종류를 알고 싶다면 처음 이 말이 생겨난 그 순간의, 그 공간의, 그만큼의 비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비와 그때의 비의 공통점에서 우리는 '좋아'를 말한다. '비 오는 날'에 대한 취향이다.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
       빗소리를 듣고 있는 게 좋아.


나의 '비 오는 날이 좋아.'는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영향이었다.


학교를 쉬는 날, 학교를 가지 않으면 부모님을 따라 농사일을 도우러 나서야 했다. 학교가 쉬는 날이라 할지라도 농사일은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달랐다. 비가 오면 할 수 있는 농사일의 범위가 줄었다. 내가 도와야 하는 일도 줄었다. 학교를 쉬는 날, 게다가 비가 오는 날, 그 날은 쉬는 날이었다.


창 밖에 보이는 그날의 서늘함과 빗소리 덕에 나는 쉴 수 있었다. 잠깐씩만 비닐하우스에 가서 있기만 하면 됐다. 이때 비닐하우스의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의 중창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을 가진 소리였다. 그때는 해야하는 일을 다 마쳐도, 잠시 자리를 잡고 그 소리에 흠뻑 빠져있었다. 이때 '비 오는 날이 좋아.'라고 말하게 되었다.



취향관 창 밖으로 빗소리랑 같이 비 내리는 모습을 본다. 비 오는 날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아도 취향관을 찾는 발길은 적지 않다.


취향관은 비를 보기 좋다.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넓은 창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모습, 비가 내리는 모습, 세차게 부는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 당황하는 행인의 모습까지 보인다. 


비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 어두워진 돌과 도로의 색, 더불어 어둑해진 공기의 기운과는 상반되는 빛을 비추는 공간에서 찝찝하게 비를 맞지 않고도 창 밖의 비를 본다. 창과 가까운 자리를 잡으면 바깥의 빗소리와 안의 음악소리가 섞여 들린다. 좋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곳에서 '비 오는 날이 좋아.'라는 말을 만들어 갈 지도 모르겠다. 취향관을 오는 길 내내 '비 오는 날이 싫어.'를 연발했을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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