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너는 더 이상 늙지 않는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늙지 않는다, 고 어딘가에서 읽었다.
1년, 2년,5년,10년...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어느 책이든, 그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몇 년이 지나도 늙지 않는다. 더 이상 키가 자라지도 않고, 주름이 생기지도 않는다. 반면에 나는 조금씩 늙어간다. 어릴 적보다 훌쩍 자랐고, 먹은 끼니의 수는 훨씬 많아졌다. 누군가의 책장 속에 꽂혀있던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늙지 않는다. 그대로, 멈춰있다.
K가 생각난다. K와는 어린 시절 함께 놀곤 했었다. K는 키가 무척 작았다. 또래에 비해서 무척 작았으므로 그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땅꼬마'라고 불렸다. 땅꼬마인 K는 그렇게 작았음에도 야구를 하면 꼭 포수를 도맡아하곤 했다. 포수는 한번 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더 작아져야 했다. 그래도 K는 꼭 포수를 했다. 나는 그런 K에게 공을 던지는 투수를 하곤 했다. 우리들 사이에서의 야구는, 볼품없는 제구력과 형편없는 타격의 연속이었으므로 공은 항상 포수인 K의 주변에서 머물렀다. 잘 던지지 못하고, 잘 치지 못하니 그나마 공은 포수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K는 포수를 하곤 했던 걸까. 어쨌든 K는 포수를 했었다. 그 작은 키에. 그러면서 꼭 타선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격수인 P의 이름으로 자신을 칭하곤 했다. 그랬었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리그를 펼치던 동네야구는, 초등학생을 마치면서 막을 내렸다. K와 나는 서로 다른 중학교를 갔다. 같은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친해진 K와 나는,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학교라는 이유로 멀어졌다. 멀어지려고 멀어진 것은 아니다. 그냥,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종종 서로의 소식을 듣곤 했었다. 여전히 K는 땅꼬마였고, 나는 또래에 비해서 키가 더 커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고선 K의 소식을 잘 듣지 못했다. 그저 K는 교복이 한복처럼 생긴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그것뿐이었다. 교복이 한복처럼 생기진 않은 학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K가 떠올랐다. 지금처럼. K의 미니홈피를 들어갔다. 당연히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잘 지내고 있지 않았다. K의 미니홈피였지만 K의 글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대신 너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글들이 가득했다. 마지막... K는 나와는 인사도 하지 않고, 혼자서, 막을 내렸다. 사고였다, 는 글이 있었다. K는 한복처럼 생긴 교복을 입고 사고를 당했다. 이제, 더 이상, K와 야구를 할 수 없다, 고 생각했다.
K는 키가 무척 작았다. 또래에 비해서 무척 작았으므로 그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땅꼬마'라고 불렸다. 언제쯤이면 키가 많이 크겠지,라고 말해줬지만, 거짓말. 더 이상 K의 키는 자라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이다. K는 앞으로도 자라지 않을 것이고, 늙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앞으로 더 늙어간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늙지 않는다, 고 어딘가에서 읽었다. 그리고 K, 너는 더 이상 늙지 않는다.
K는, 내 마음 속에 있을, 책장 어딘가에서 그렇게, 그대로, 멈춰있다.
모든 저(영재)의 글과 그림을 올립니다.
사실, 진짜로 모든 글과 그림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글거림(영재+오글거림)'이라는 대학 새내기 시절 한때의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