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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Apr 16. 2018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자국

Almost Paradise, 영화 <마더!>

생(生)은 생으로 존재한 순간부터 죽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생들은 죽어가는 것들이다. 우리는 죽어가며 살아간다. 이 세상에 완벽한 생이란, 어쩌면 완벽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죽음에 이르는 삶 속에서 새로운 죽음을 잉태하는 자가 있나니, 그건 바로 신이요. 다른 하나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영화 <마더!>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시인과 시인의 아내는 불에 타 성한 곳 없던 3층짜리 집에 산다.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해 괴로워하고, 아내는 불에 탄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애쓴다. 시인에게는 시를 창조하는 일이, 아내에게는 집을 파라다이스로 만드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런 부부에게 이름을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이 찾아오고, 부부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낯선 이들은 부부의 집에 얹혀 살며 아내가 만들어가던 파라다이스에 오점을 남긴다. 남편이 아끼는 유리조각을 깨뜨리고, 그들의 자식들은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린다. 결국 그녀의 집에서 피를 흘리며 아들 중 한 명이 죽는 사고가 벌어진다. 핏자국은 그대로 바닥에 남아 시인의 아내를 괴롭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낯선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녀의 집을 찾아와 난장판을 만들어낸다. 종내에는 그녀가 고쳐나가고,, 만들어가던 집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사람들은 싸우고, 피를 흘리고, 죽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괜찮다고 말한다.

영화의 끝에 드러나는 시인의 정체를 알면 영화 내내 고구마 1000개는 먹은 것 같던 시인의 답답함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릴 지도 모른다. 시를 창조하는 시인은 단순히 시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임에 분명하다. 시인은 이런 시의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주이기도 했다. 영어 표현으로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시인'의 발음이 '신'과 유사함에 대해서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이 괜찮다고 함은 마치 예수가 '너의 원수까지 사랑하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연호에 시인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아이마저 건넨다. 집은 다 망가지고, 무너지고, 아이마저 죽는다. 아내가 지우려고 했던 불에 탄 흔적들은 다른 죽어가는 것들의 자국과 함께 진해진다. 결국 아내는 스스로 집에 불을 지른다. 파라다이스로 만들어 나가려던 집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과 함께 죽어간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윤동주, 서시)의 말처럼 신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 한다. 생들이 죽은 뒤에야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었으므로. 끝내 아내도 그런 시인의 모습에 자신의 죽음까지 바친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자국, Almost Paradise. 영화 <마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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