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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Apr 24. 2018

[에라이,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

'환상통'을 이겨내는 환상

우리는 썰매를 탄다(Parallel, 2014)

‘환상통’을 이겨내는 환상.

썰매가 있다. 썰매는 몸을 태우는 보드와 보드를 태우는 두 날로 구성된다. 두 날은 수평을 이루고 보드에 대해선 수직을 이룬다. 보드와 수직을 이루는 두 날은 보드가 지면과 수평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날 간의 간격이 넓을수록 중심 잡기는 쉬워진다. 하지만 그만큼 속도를 내기도, 회전하기도 힘들다. 회전을 위해서는 ‘축’이 필요하며, 최대한 마찰을 줄여야 속도를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날 간의 간격을 좁힌다. 한 발을 축으로 도약하려는 사람처럼 썰매의 날도 거의 한 발이다.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썰매 이야기다.

2018 평창 패럴림픽 파라 아이스하키 동메달을 따낸 대한민국 국가대표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이야기는 ‘도약’의 이야기다. <우리는 썰매를 탄다.>가 바로 그것이다. 2012년 파라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우리는 썰매를 탄다.>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었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썰매를 탄다는 것이다. 그들은 썰매를 탄 채로 링크장을 달리고, 돌고, 부딪히고, 넘어진다. 링크장에서만이 아니다. 사회에서도 달리고, 돌고, 부딪히고, 넘어진다. 지원이 전무한 파라 아이스하키 대회를 나가기 위해 돈을 벌고, 연습하고, 무시 당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날을 세우고 퍽(아이스하키 공)을 쫓는다.


영화를 보며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환상통’으로 고통 받는 선수의 모습이었다. 환상통은 이전에 있었던 다리가 지금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현상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통증에 고통스러워 하는 선수의 모습에 이어지는 링크장 위의 충돌 장면. 실제로는 충돌하며 느껴지는 고통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링크장 위에서의 충돌은 선수들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흔적에 더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현재의 고통은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다리를 잃은 기억은 퍽을 쫓아가는 순간에 사라진다. 퍽을 상대방의 그물에 집어 넣는 환상을 그린다. 환상통을 이겨내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영화의 배경인 2012년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2018년의 평창 패럴림픽도 끝난 뒤, 몇몇 선수는 은퇴를 하거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며 또 새로운 길을 찾는다. 선수로서 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환상통으로 고통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환상을 그리며 참는다. 한 발 같은 썰매를 축으로 도약하려는 것이다.

두 발이 다 성한 우리들 중 누구는 선수들과 같은 ‘환상통’은 아니지만 과거의 무언가에 얽매여 환상통을 겪으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환상통을 이기는 또다른 환상은 무엇일까? 어떤 축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그것이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는 ‘썰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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