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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Apr 27. 2018

[에라이, 영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면 좋으련만.

영화 <문영>

[스포일러 포함]새벽 4시를 넘었다. 시험을 마치고 온 기념으로 영화를 봤다. 새벽 시간이니 잔잔한 영화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문영>을 틀었다.

문영은 말을 하지 못한다. 일단은 그렇다. 들을 수는 있다. 자그마한 캠코더를 들고 다닌다. 영상을 남긴다. 집에는 만취한 아버지만 있고, 방문은 걸쇠로 채워져 있다. 아버지가 문영을 감금하기 위해 자물쇠를 채운건지 걱정했다. 그렇지는 않다. 문영이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닫는다. 아버지가 깬다. 방문을 두드리며 문영에게 소리 친다. 문영이 문을 열기 전에 문영의 방에 들어설 수 없다. 문영은 스스로 자물쇠를 채웠다.

문영의 캠코더에 한 여인이 잡힌다. 희수다. 희수가 전 남자친구와 싸운다. 캠코더를 바라본다. 문영을 바라본다. 문영은 도망가고 희수는 붙잡는다. 영상을 CD로 구워오라 요구하고 그 계기로부터 문영과 희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말을 하지 못하는 문영이 가슴을 턱턱 치고, 자신의 입을 가르치며 말을 하지 못한다는 표현을 할 때 '문영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 없는 대사.

문영의 집에 희수가 찾아온다. 굳게 닫혀 있던 문영의 방문이 열린다. 희수가 들어온다. 문영은 희수에게 캠코더를 찍는 이유를 알려준다. 속내를 털어 놓는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를 다녀온 문영이 본 것은 아버지에게 밥을 차려주는 희수의 모습. 그 모습을 본 문영은 문 밖을 뛰쳐 나간다. 속내를 다 털어 놓은 희수에게 자신의 가장 큰 치부인 아버지가 마주하고 있음을 참지 못한 것이리라. 


문영아 너, 벙어리 아니지?

문영이 캠코더를 찍는 이유는 사람 많은 지하철 어딘가에 엄마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영화의 말미에 문영은 한 여인과 부딪히고, 그 여인을 뒤쫓는다. 여인의 팔을 붙잡고 외친다. "엄마, 엄마, 나 문영이야." 하지만 여인은 사람 잘못 본 것 같다며 문영을 팔에서 떼어 내고 갈 길을 간다.

말을 하지 못하는 문영이 말을 했다. 희수를 만나 이야기한다. "언니, 나 오늘, 엄마 만났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문영은 말을 못한다. 아니, 하지 않는다. 문영의 입은 방의 자물쇠처럼 닫혀 있다. 그러다 "엄마, 엄마, 나 문영이야." 라는 말과 함께 입이 열린다.

문영에게 중요한 것은 엄마라기보다는 '엄마라는 말'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슴을 턱턱 치고, 입을 자신의 입을 가르치며 하고 싶었던 말은 '엄마' 였나 보다. 

희수는 문영에게 엄마의 존재로 다가온게 아닐까? 그래서 문영은 희수에게 방의 자물쇠를 열고, 마음을 열고, 입까지 연 것이다. 문영이 스스로 채웠던 자물쇠를 풀게 한 것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처음 문영이 입을 뗐을 때 든 생각은 '역시나...'였다. 말을 하지 못함을 바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들에도 상황이 끝난 뒤에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제스쳐를 취하는 문영을 통해 무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영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잘 알아 들었고, 너무나 잘 행동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청각도 좋지 않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견일까.)

문영은 말하지 않는 말의 표현이었다. 캠코더로 대변되는 시각이 있었고, 틈틈히 덮어쓰는 이불은 살갗에 닿았다.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말을 하지 못할 수도, 누군가는 누군가의 엄마일 수도, 동성애자(언급하지 않았지만 희수의 이야기다.) 일수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일단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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