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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an 07. 2019

필승. 수고하셨습니다.

꼭 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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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부터 16년, 전산병으로 근무하며 군대에서 루컴스와 ATEC PC를 수도 없이 만졌다. 못해도 수천 대를 옮겼고, 수십 혹은 수백 대를 설치했다.


더블 모니터를 설치하고 싶다는 간부들의 요구는 직별장을 거론해 거절했다가 전화를 받고 소리치는 직별장의 지시에 군말없이 따랐다. 짬이 높고 목소리가 큰 직별장으로 커버친 일들은 결국 직별장의 고래고래로 우리가 뒤처리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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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꼭 말을 바꾼다." 부대원끼리 쑥덕거렸지만 이내 적응이 되어 적당히 알아서 조정했다. 전역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감정의 기복이 컸던 그 직별장은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강등되었다. 어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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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팀으로 첫 배치를 받고 자리에 컴퓨터를 설치했다. 마침 루컴스 PC. 그리고 더블 모니터. 군대에서 컴퓨터를 설치하던 짬밥으로 금방 자리에 컴퓨터를 설치했다. 더블 모니터도 설치. 그리고 하루종일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이것저것 PC를 만지작.


가만히 자리에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거나 들었다. 그러면서 꼭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나는 전산병이라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고, 남의 사무실에도 자주 갔었으니 그 분위기를 안다. 서로 소리치는 소리나 숨막히게 고요한 분위기. 괜히 무엇인가 클릭하는 소리. 전화를 이것저것 설명하는 소리. 참 군대도 뭐 공공기관이었지.


군대에서는 PC를 설치하러 돌아다니며, 장비를 가지러 간 창고에서, 회의실 장비실에서 기다리며 숨을 돌렸다. 책상 밑에 내려가 선을 정리하며, 사다리를 타고 천장 위로 올라가며 '몸은 좀 굴려도 마음은 편하니 좋네.' 생각 했었다.


그런데 흠. 앞으로는 내 책상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군대에서 도피처였던 책상 밑이나 천장 위, 창고나 장비실이 바로 딱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뭐, 군대에 다시 온 느낌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것보다는 편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 직별장한테도 분위기 잘 맞춰서 내 시간을 잘 챙겨먹었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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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장님 시간 다 돼서 저희 전투체육하러 가보겠습니다. 필승.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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