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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un 06. 2020

누워서 전합니다. 누워서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저는 지금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워 있고요.

저는 지금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워 있고, 책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책 사이에 연필을 꽂아둔 채로 책은 닫았습니다. 책은 배 위에 올리고 휴대폰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타이핑을 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친구에게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살피다 짤막하게 적어내는 짧은 호흡의 글이 아니라, 조금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글을 책을 읽다 말고 휴대폰으로 쓰는 중입니다. 읽던 책은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 완결 판 - 언스크립티드 UNSCRIPTED>이며, "당신의 새로운 정체성이 '나는 작가다'라면 매일 몇 문단씩 글을 쓰라. 이전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지 말고 노력 위에 노력을 쌓아가라. 그렇게 노력의 상승곡선을 그려가라. (중략) 새 정체성을 증명해 보임에 있어서 매일 1퍼센트의 전진을 이룩하면서 1년을 보내고 나면 당신은 새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며 과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238p) 문단을 읽은 이후입니다.


얼핏 주의력 결핍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짓(읽던 책을 내려두고 글을 쓰는 일)은 그간 저도 모르게 쌓아온 글쓰기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일입니다. 엠제이 드마코의 말처럼 1퍼센트의 전진을 이룩하기 위한 일입니다. 글 쓰는 일이란 무릇 10분 간의 명상을 마치고 맑은 정신으로, 옆에는 정갈하게 세팅된 종이와 연필 혹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는 상태로, 따뜻한 녹차 한 잔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때서야 비로소, 아! 초콜릿이나 견과류 같이 곁들일 다과도 있어야 하겠네요. 그렇게 갖춰준 상태에서야 비로소 첫 문장의 가장 앞 단어를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누워 있는 상태로, 책을 읽다 말고 휴대폰을 집어 들고 긴 글을 쓰는 일이란, 신성한 글쓰기를 모독하는 일이 아닐는지! 와 같은 진입장벽이 저도 모르게 쌓이고 쌓였던 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성하게 글을 쓰는 일이란, 신의 계시와 비슷한 일이라서 몇 주에 한번 꼴이라든지, 1년에 고작 몇 번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워 있는 상태로, 다른 그 무엇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신성한 글쓰기에 대한 모독이라고요? 그래 봤자 별거 아닌 글밖에 써내지 못할 것이라고요? 인정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제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글을 쓰고자 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누운 상태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서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저는 그저 쓰려할 뿐입니다.

 

어느덧 800명의 구독자가 생겼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방치한 브런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0명의 브런치 이용자께서 제 계정을 찾아와 구독을 눌러주셨습니다. 하루에 1명꼴로 구독해주셨다고 친다면, 800일. 그러니까 2년 이상의 시일이 걸렸을 일입니다. 물론 제가 브런치 계정을 오픈한 것은 그것보다 더 오랜 시간 전의 일이지만요.


다시 글을 쓸 것입니다. 실은 이런 종류의-글을 쓸 것이다. 다시 글을 쓸 것이다- 선언적 내용의 글을 시시때때로 쓰는 중이지만, 어쨌든 그것마저 없다면 저는 글을 영영 써내지 못할 테니 그런 종류의 글과 함께 구독자분들이, 그리고 브런치를 이용하는 저의 잠재 구독자분들이 잠시간의 시간을 내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낼 것입니다. 그렇게 800명이 900명이 되고, 900명이 1000명이 되는 상승곡선이 그려진다면, 제 이야기는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받을 테고, 그 이야기를 읽은 구독자분들은 그 사실에 조금이나마 뿌듯하실 수 있기를.


허니 누워서 휴대폰으로라도 글을 씁니다. 어차피 글은, 생각은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니. 자그마한 액정 속으로 그걸 옮기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누워서 휴대폰 화면 스크롤을 슥슥 내리면서 읽어도 괜찮다는 것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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