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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un 20. 2020

그것은 '사고'였다. 나는 상담을 받았다.

토요일 오전 11시, 코로나 19 의심 증세로 지난주에 받지 못했던 상담을 받기 위해 카페로 나섰다. 이미 상담이란 대학생 시절에 받아보았던 터,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시간이란 것을 안다. 누군가는 자기 이야기를 평소에도 이곳저곳에 털어대지만, 평소에 입을 꾹 닫고 내 이야기일랑 하지 않는 나로서는 상담으로라도 털어내야만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있기도 하다.


#가만히 있는 시간조차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나라는 사람 : 달리기, 책 읽기, 명상하기.


우선은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회사의 직무 스트레스 검사에서 '매우 불안정'으로 나온 탓에 하는 검사인 덕이다. 5회기 동안 회사에서 지원되는 비용으로 진행하는 검사. 그 검사에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거나 다른 활동을 하면서 바보가 되는 느낌을 다른 것으로 돌린다고 하였다. 그러자 "정말 매일 할 수 있어요?"라고 묻는 상담사님.


정말 매일 할 수 있어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청계천을 달리고, 퇴근 후면 서점으로 향해서 책 1권을 매일 읽을 수 있냐는 말이었다. 지금 당장 일주일이나 한 달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계속할 수 있냐는 말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정말 현실적이냐는 말이었다. 기준이 너무 높거나 뜬구름 잡는 목표가 아니냐는 말이었다. 해내면 정말 기쁘지만 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은 어쩌냐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해내지 못한 날의 실망감이 더 큰 요즘이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을 대체하기 위해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가만히 있는 그 시간마저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도무지 나는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이며, 시간을 죽이는 일이란 불만족스러운 상황의 근원이었다. 그런 일을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직무 스트레스가 높을 수밖에. 그래도 요즘은 회사에서의 직무 불만족을 개인 공부나 프로젝트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긍정적인 전환이지만 목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를.


#흑백논리 : 사고로 사람을 사귀느냐, 감정으로 사람을 사귀느냐.


상담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마음을 열고 싶다고 했다. 회사원이 되고선 특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이뤄지는 관계란, 업무적인 범위를 벗어나서는 다 시시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시간을 죽이는 아까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인 관계나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는 무엇인지 같아 이야기해보았다. 그것은 사고였다. 그러니까 나는 감정이 아니라 '사고(思考)', 즉 생각으로 사람과 관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득이 되지 않는 관계는 모두 시시하다 생각한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회사동기들이 누군가의 생일이면 함께 보내는 식사 자리에서 모두가 선물을 챙겨줄 때도 나는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한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에겐 "왜 너는 네 마음을 표현하지 않아?"라는 소리를 듣기도.


이것 아니면 저것. 생각으로 판단하고, 생각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러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냥' 전화해서 이것저것 주저리주저리 털어댈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해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은 다음 상담이 돌아올 때까지 오늘 이야기를 되짚으며 '행동'하기를 권하셨다. 관계의 진전을 위해서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을까 물으셨다. 동기들에게 하지 않았던 선물이 생각났다. 밥만 같이 먹으면 되지 굳이 선물까지 챙겨줄 필요가 있느냐 생각했던 그 선물.


상담사님은 관계란 극과 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지점의 것들이 무수히 많고, 그런 관계란 '신뢰'에서 유지되며, 이런 것들이 '사회성'과 결부되어 이해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며 선물에 대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늘의 상담을 마쳤다.


상담을 마쳤고, 서점에 갈 생각이다. 오늘은 나의 능력 발전을 위한 책은 잠시 뒤로 미루고, 동기들에게 하지 못한 선물 역할을 할 책을 살펴보아야겠다. 그러니까 결국엔 이것도 나의 '관계 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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