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_3월 18일의 탄생화
구철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중간자였다.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 틈에 끼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그렇다고 빵 셔틀이 된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구철은 투명 인간이었다. 그 누구도 구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선생님들조차 출석을 부를 때 구철의 이름을 빼놓고는 했다. 그렇다고 구철은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손을 들고 말씀드리지 않았다.
졸업 후 구철은 재봉틀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의 말단 영업 사원이 됐다. 회사는 물건을 팔 때 안 좋은 점은 최대한 숨기고 좋은 점은 과장해서 말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손님을 속이는 것 같아 구철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님에게 모든 마음을 열어놓고 솔직히 말한 것도 아니었다. 마음 한편에는 자신이 회사의 영업 사원이고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또렷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언제나 구철은 손님을 애매하게 대하며 세 달 동안 단 하나의 재봉틀도 팔지 못했다. 회사에서조차 구철은 회사와 손님 사이의 끼인 자였다. 실적이 안 나오는 비정규직 영업 사원을 회사는 받아주지 않았고, 일을 시작한 지 넉 달째가 되는 날 구철은 회사에서 해고됐다.
구철은 그 날 소주를 거나하게 먹고선 자신의 반지하 집으로 비틀거리며 돌아왔다. 해가 쨍하게 뜬 날에도 집의 절반까지만 밝아지는 음산한 공간이었다. 어둠과 빛이 섞여 이도 저도 아닌 곳에 살고 있다는 게 문득 짜증이 난 구철은 다음날 건축사무소를 찾았다. 세 달 동안 모아놓은 돈을 전부 내면서 특이한 주문을 넣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가운데에 바닥을 만드는 것이었다. 건축사무소 실장은 난생처음 보는 요구에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구철이 내놓은 돈이 적지 않길래 알겠다고 했다.
구철이 요구한 공사는 한 마디로 복층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집 중간에 수평의 벽을 만들고 계단을 달아 층고가 낮은 복층 원룸을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한가운데 벽을 만들면 집 안에서 허리를 펴고 다니는 게 불가능하다고 실장은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철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서 허리 펴고 다닐 일 없다고 말하는 구철의 눈빛은 강고했다.
일주일간의 공사가 끝난 뒤, 구철의 집은 요상한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평범한 복층 집을 강한 압축기로 위에서 눌러놓은 듯한 모양새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더 이상 구철의 집은 '반지하' 같이 끼인 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층고는 비록 평범한 건물의 절반이었지만 적어도 층과 층 사이에 애매하게 끼이지는 않았다. 다락방이라고 불러야 맞을 위층을 구철은 '1층'이라고 불렀다. 구철의 집 1층은 바깥세상 모든 건물의 1층의 바닥과 높이가 같았다. 그리고 아래층은 '지하실'이라고 불렀다. 집의 유일한 창문은 다락방, 아니 1층에만 있었다. 때문에 지하실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완벽한 양지와 음지의 구분이었다.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도 아닌 회색 공간이 명확히 밝은 공간과 어두운 공간으로 나뉘었다.
구철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1층에서 지냈다. 구철이 지하실에 발을 디딜 때는 현관문을 통해 집 밖을 나가거나 집에 들어올 때, 화장실을 갈 때, 냉장고 문을 열거나 설거지를 할 때뿐이었다.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 생활은 오로지 한 평도 안 되는 1층에서 이뤄졌다. 구철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1층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엎드려서 책을 읽거나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했다.
구철은 집에서 불을 켜지 않았다. 낮 동안 1층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바퀴벌레나 쥐가 숨어 살기 딱 좋은 곳. 아닌 게 아니라 작은 생명체가 사삭 거리며 빠르게 지나다니는 소리가 지하실에서 자주 들려왔다. 하지만 구철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철은 1층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다. 우당탕 넘어지는 충격에 그만 계단이 부서지고 말았다. 부서진 계단을 구철은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계단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층고는 높지 않았기에 뛰어오르면 충분히 1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구철은 절대로 1층에 올라가지 않았다. 건축사무소에 연락해 왜 부실공사를 했냐고 따지지도 않았으며, 다시 계단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지도 않았다. 지하실이라고 부르는 어두운 곳에서 그림자들과 함께 지냈다.
_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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