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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꽃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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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14. 2020

벚꽃(순결, 절세미인)  - 포토존

봄_3월 21일의 탄생화

포토존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서있는 자리가, 당신의 모습이, 당신의 발자취가 사람들이 담고 싶어 하는 포토존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때로는 그것이 놀림거리 일 수도, 신기함의 반증일 수도, 정말 드물게는 영광의 흔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사진이 사람들의 유희의 수단이거나 기록의 방식이거나 인증의 매개이기 때문에 비롯된다. 또한 의도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포토존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담고 싶어 하는 그 무언가의 언저리에서 내가 눈치채지 않는 사이에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말이다.

날씨가 따뜻해졌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괜스레 밖으로 나가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 답답하지만 그래도 밖을 나선다. 도시락을 챙겨 공터에 앉는다. 한참을 밥을 먹고 있자니 사람들이 카메라를 든다. 나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 하얀색과 분홍빛이 감도는 점이 보인다. 벚꽃이다. 꽃이 피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었다. 마침 나는 그 언저리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포토존이 되었다. 한 사람이 지나가고, 다른 사람이 오면 다른 카메라가 우리 쪽을 향했다. 물론 나를 찍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토존에 있던 탓에 셔터 세례를 받아야 했다. 얼른 밥을 먹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때는 이 벚꽃 사이에서 대놓고 포토존이 되기도 했다. 군항제가 한창인 진해에서였다. 해군이었고, 부대 외출을 나가게 되었다. 해군 장병의 부대 외출이란 부대원들끼리 아침에 나와 저녁에 들어갈 때까지 평소 부대 안에서 하지 못했던 활동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단, 해군 정복을 입어야 했다. 군항제는 3월 이후의 시기에 시작되었으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인 하정복을 입었다. 그 모습을 쉬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한 모습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결국 포토존이 되어 주길 바랐다. "우리 같이 사진 좀 찍어 주면 안 돼?" 하며 다짜고짜 바짝 달라붙는다.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어버버버. 포토존이 되었다. 이건 신기함의 반증이려나. 몇 차례의 사진 세례를 연달아 받았다. 하얗고, 분홍빛의 벚꽃이 가득한 진해에서 우린 사람들이 없는 PC방으로 도망치듯 향했다. 그런 식의 포토존은 그리 달갑지 않았으니까. 처음부터 PC방을 향할 계획이긴 했지만 말이다.


날이 좋아지면서 포토존이 늘어나고 있다. 회색빛 감돌던 겨울에서 주황빛이랄까, 초록빛이랄까 따스한 색의 자연광이 포토존 곳곳을 비춘다. 꽃들은 포토존에 비치되어 있는 소품들.  특히 벚꽃이 포토존을 가득 채운다. 마스크가 입을 가리고 있지만, 이 포토존에선 웬만하면 스마일이다. 조금 더 지나 벚꽃이 만개하고, 봄바람이 휘날리면,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진 이 거리를. 하나-둘-셋-찰칵. 스마일이다. 이만큼 순결하고 이쁜 게 어디 있으랴.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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