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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15. 2020

패모꽃(위엄) - 패모꽃 대왕과 연꽃 의원

봄_4월 25일의 탄생화

고대 중국에는 꽃들이 사는 나라가 있었다. 그 왕의 군주는 패모꽃이었다. 하지만 패모꽃은 군주로서의 위엄이 없었다. 자애로운 성품을 갖고 있었지만 항상 아래로 향하고 있는 머리와 얼굴에 가득한 점들 때문에 다른 꽃들은 패모꽃을 군주로서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향기가 가득한 장미꽃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장미꽃을 비롯한 다른 꽃들은 패모꽃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왕의 행차에도 예를 갖추지 않기 일쑤였다. 때문에 패모꽃은 근심이 많았고, 결국 앓아눕게 되었다. 

왕의 병이 날로 심해지자 나라에는 왕의 병을 고치는 자에게 상과 관직을 주겠다는 방을 붙였다. 수많은 의원들이 궁궐에 다녀갔지만 그 어떤 꽃도 패모꽃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었다. 시름이 깊어가는 와중 마지막으로 연꽃 의원이 패모를 알현했다. 한참 동안 패모꽃의 맥을 짚은 연꽃은 패모에게 이야기했다.

   "폐하, 소신이 보기에는 폐하의 병은 몸의 병은 아닌 듯 하옵니다."


놀란 패모꽃은 연꽃 의원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 이 병이 몸의 병이 아니라고 하는가? 이리도 아픈 짐이 보이지 않는가?"


연꽃 의원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물론 폐하께서 병세가 깊은 것은 익히 보이옵니다. 하지만 이는 마음의 병으로 보이옵니다. 폐하의 마음에 있는 근심을 덜어내지 않는다면 온 세상의 값비싼 약재를 전부 사용한다 한들 낫지 못할 것이옵니다. 어떤 근심이 있는지 소인에게 말씀해 주신다면 소인이 힘써보겠나이다."


이에 패모꽃은 한숨을 쉬며 연꽃 의원에게 이제까지 자신이 겪은 일과 걱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한참을 듣고 있던 연꽃 의원은 패모꽃에게 말했다. 

   "폐하, 며칠 동안 소신의 말대로 하신다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동안 쌓여있던 상소문을 같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패모꽃은 정무를 본 적 없던 연꽃 의원을 탐탁지 않아했지만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해도 좋다고 말했다. 


첫 번째 상소는 달맞이꽃의 상소였다. 연약한 몸을 가지고 있던 달맞이꽃은 언제나 다른 꽃들에게 치이고 밀리며 근근이 살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꽃들이 해님에게 헛소문을 내어 달맞이꽃에게 햇빛을 나눠주면 오히려 해님이 달맞이꽃처럼 연약해질 수 있다고 모략하기도 했다. 이에 해님은 달맞이꽃에게 햇빛을 나눠주기 꺼려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패모꽃은 연꽃 의원에게 다른 꽃들로 하여금 달맞이꽃을 괴롭히지 말고 이를 어기면 벌에 처하게 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연꽃 의원은 이는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 생각했다. 이에 연꽃 의원은 방을 붙이는 대신 달님에게 찾아가 달맞이꽃의 고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달맞이꽃에게 가서는 낮이 아닌 밤에 꽃을 피우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달맞이꽃은 연꽃 의원의 말대로 밤에 꽃을 피웠고, 달님은 달맞이꽃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에게 자애로운 달빛을 나눠주었다. 이에 달맞이꽃은 더욱 건강해졌고 아주 아름다운 노란 꽃을 활짝 피우며 밤늦게 돌아다니는 동물들과 곤충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두 번째 상소는 나팔꽃의 상소였다. 훌륭한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출신 성분이 비천하여 궁중 악사로 기용되지 못한 나팔꽃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간신히 생활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나팔꽃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패모꽃은 연꽃 의원에게 궁중 악사로 등용하라 명했다. 하지만 연꽃 의원은 만약 나팔꽃을 궁중 악사로 바로 등용한다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궁중 악사들에게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고, 온 나라의 거리악사들에게서 자신들도 등용해달라는 상소문이 빗발칠 것을 우려하였다. 이에 연꽃 의원은 나팔꽃을 찾아가 해가 뜨는 새벽에 꽃을 피워 아름다운 소리로 다른 꽃을 깨우는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조언했다. 나팔꽃은 연꽃 의원의 말에 따라 고요한 이른 아침에 꽃을 피우고 옥구슬 같은 나팔소리를 불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일어난 다른 꽃들은 나팔꽃의 연주를 극찬하였다. 그리고 궁중 악사들도 나팔꽃의 연주를 듣고는 자진하여 패모꽃에게 추천서를 올렸다. 이에 나팔꽃은 모든 꽃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당히 궁중 악사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 상소는 벚꽃의 상소였다. 수려한 외모를 지녔지만 자신의 이파리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벚꽃은 개나리나 진달래에 밀려 나비와 벌들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자신의 핏줄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방법이 없었던 벚꽃은 자신의 어려움을 패모꽃에게 상소를 올려 해결책을 받고 싶었다. 이에 패모꽃은 궁궐 창고에 있는 화려한 비단을 하사하여 벚꽃의 꽃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라고 연꽃 의원에게 명했다. 하지만 연꽃 의원은 궁궐의 비단이 벚꽃을 개나리나 진달래와 대적할 정도로 화려하게 만들 만큼 넉넉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에 벚꽃에게 찾아가 이파리를 돋아나게 하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것이 어떻겠냐며 물었다. 벚꽃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꽃 의원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이파리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벚꽃의 아름다움이 그 어떤 꽃들보다도 잘 드러나게 되었다. 나비와 벌들도 벚꽃에게 관심을 가지며 벚꽃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벚꽃은 많은 자손들을 퍼트릴 수 있었다.


이렇게 연꽃 의원은 여러 꽃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며 모두 패모꽃 왕의 자애로움이라며 말하고 다녔다. 이에 상소문을 올린 꽃들은 물론이고 다른 꽃들 모두 패모꽃의 덕을 칭송하였다. 패모꽃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회복되어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 패모꽃은 연꽃 의원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그의 정무 능력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패모꽃을 질투하는 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미꽃이었다. 자신들을 따르던 꽃들이 모두 패모꽃에게로 마음을 돌리자 하늘 끝까지 질투심을 가졌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장미꽃은 예전보다 더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지면 다시금 다른 꽃들이 패모꽃을 버리고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미꽃이 자신의 외모를 가꿀수록 동물들에게 더욱 눈에 띄게 되었다. 장미꽃의 곁을 지나가는 동물들마다 장미꽃을 쓰다듬고, 헤집고, 심지어는 꺾어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패모꽃은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이전의 패모꽃이었다면 장미꽃에게 덜 아름답게 하라는 명을 내렸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장미꽃이 가진 아름다움을 살리고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방법을 고심했다. 이에 패모꽃은 장미꽃에게 왕실의 보물인 가시 갑옷을 하사했다. 가시 갑옷을 두른 장미꽃은 이제 더 이상 동물들의 해코지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롯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에 장미꽃은 그동안 자신이 품고 있던 패모꽃에 대한 질투심을 거두고 왕을 진심으로 따르기 시작했다. 장미꽃은 큰 소리로 외치며 돌아다녔다.


   "이 나라의 진정한 군자는 패모꽃 폐하이시다! 패모꽃 대왕 만세!"


그러자 변방에 있던 꽃들 또한 패모꽃을 칭송하니, 드디어 꽃의 나라의 모든 꽃들이 패모꽃을 따르게 되었다. 

패모꽃은 마침내 왕의 위엄이 살아났다며 연꽃 의원을 찾아가 공을 칭찬하였고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연꽃 의원은 상이나 관직은 자신에게는 과분한 것이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고개를 더욱 숙이며 작게 청하였다.


   "패모꽃 대왕이시어. 소신에게 작은 청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도 꽃을 피우지 않는 진흙 연못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옵니다. 이에 단단한 신발 하나를 하사해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패모꽃은 그의 덕에 감탄하며 나라에서 가장 단단한 신발을 하사하니, 그제야 연꽃 의원은 진흙 연못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낼 수 있었다. 


_제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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